매일신문

"못 깨어나면 어쩌지" 알고 나면 안심…마취의 세계

"나를 잠들게 해 줄 의사입니까?" "아니요, 당신을 안전하게 깨워주는 의사입니다."

한 마취과 전문의가 말한 마취과 의사의 정의다. 마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환자의 안전'이란 뜻이다. 이처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겁나는 게 마취다. 수술이나 검사를 할 때 당연하게 받아들여 마취제에 몸을 맡기지만 안전과 부작용 등이 없는지 궁금한 게 사실이다. 마취의 세계, 속설을 통해 살짝 들여다 본다.

◆창세기에도 마취가?

성경 창세기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어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구절을 인용, 인류 태초부터 마취가 시작됐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한 역사는 없다. 마취는 그리스어의 '감각이 없다'는 말에서 비롯됐는데, 1846년 하버드 의과대 치과의사에 의해 처음 불렸다. 지금과 같은 현대적인 마취는 50년 전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중엽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통증을 없애기 위해 마약의 일종인 초오산을 술에 타 먹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근대에는 1913년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기록이 최초다.

◆전신마취를 하면 머리가 나빠진다?

전신마취를 하면 기억력이 감퇴하고 머리가 나빠져서 공부를 못한다는 얘기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근거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마취를 많이 받아 머리가 좋아질 리 없겠지만 나빠진다고 증명된 것도 없다. 치매가 있는 노인 환자의 경우 전신마취 후 치매가 악화되기도 한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만 건강한 일반인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만약 마취 때문에 머리가 나빠진다면 매일 수술실에서 마취가스 냄새를 맡는 마취과 의사의 기억력은 어떻게 될까.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면 마취가 안 된다?

저산소증이 발생하면 얼굴과 손톱이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 증상을 보인다. 그래서 마취할 때 긴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환자의 얼굴과 손톱 상태를 살피곤 했다. 때문에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손톱에 매니큐어, 봉숭아 물을 들일 경우 저산소증 확인이 어려워 마취 전 지우도록 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옛날 얘기. 지금은 환자의 저산소증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장비들이 사용되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감염 위험 탓에 청결하게 할 필요가 있고, 말초혈액의 산소포화도를 나타내는 '맥박 산소 계측기'를 주로 손톱 부위에 부착하는데, 봉숭아물이나 매니큐어 때문에 부정확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처럼 손수건에 마취약을 묻혀 마취시킬 수 있다?

영화에서 보면 악당들이 마취약을 거즈에 묻혀 주인공의 얼굴을 막아 곧바로 마취시키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이는 19세기에 사용된 클로로포름이나 에테르라는 흡입마취제일 가능성이 큰데 실제 대뇌를 마비시키는 작용이 있지만 현재는 구하기도 힘들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성은 없다는 말이다. 또 의식을 잃게 하려면 상당한 양의 클로로포름이 필요한데다 수초 내에 마취시키지도 못한다. 요즘 사용되는 흡입마취 약물들도 대기 중에 노출되면 바로 기화돼 증발되기 때문에 현재로선 수건을 코에 갖다 대자마자 기절시킬 수 있는 마취약은 없다. 이렇게 간편하고 좋은 방법이 있다면 왜 모든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

◆마취를 했는데도 의식이 있다고?

이를 '마취 중 각성'이라 한다. 전신마취를 했는데도 의식이 있어 수술 중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는 경우다. 전신마취 중 각성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수술 종류에 따라 발생 빈도가 다르지만 1천명당 1명 정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최근엔 마취 깊이 감시장치를 사용해 전신마취 중 각성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보편화되진 않고 있다.

◆수면마취도 전신마취인가?

수면마취는 큰 의미에선 전신마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도유지를 위해 기관 내 튜브를 넣지 않고 정맥마취제를 투여해 잠을 재우기 때문에 전형적인 전신마취와는 조금 다르다. 수면마취의 경우 비교적 간단하고 전신마취에 대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어 간단한 성형외과 및 치과 수술이나 위내시경 시술 등에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기관 내 삽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술이나 진료 중 기도가 막히는 위급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수면마취는 정식 용어는 아니고 마취과에선 이를 '감시 마취 관리'라 부른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도움말·김진모 계명대 동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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