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시집 한 권이 우편으로 저에게 닿았습니다. '웃는 기와'라는 제목의 이봉직 동시집이었습니다. 면식이 없는 시인의 편지도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표제시인 '웃는 기와'라는 시를 쓴 계기가 되었던 국립경주박물관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늦게나마 시집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시집을 펼쳐 보았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웃는 기와'라는 작품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 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 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아, 하는 감탄과 함께 몇 차례 더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합니다만, 왜 진작 이런 훌륭한 시를 알지 못했었나 하며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뒤 경주박물관에서 경주 산내면의 의곡초등학교 우라분교와 일부분교 학생들을 초청하여 '박물관 나들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이 웃는 기와를 어린이들과 함께 한 줄 한 줄 소리내어 읽기도 했습니다.
웃는 기와의 소재가 된 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는 경주 영묘사터(靈廟寺址)에서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신라의 미소로도 널리 알려진, 경주와 신라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어 버린 너무나 유명한 문화재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전시품 가운데에서도 빼놓지 말고 꼭 보아야 할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기와들로 이은 집을 상상해보면, 그 집은 그야말로 웃는 집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웃음 그칠 날 없었을 터입니다. 이런 웃는 기와를 지붕에 이는 생각을 해낸 신라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이 기와를 본떠 만든 기념품들이 많습니다만, 왠지 그 웃음이 전혀 살아나질 않습니다. 겉만 흉내낼 뿐이어서 그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얼굴무늬수막새' 앞에 서면 '웃는 기와'가 떠오릅니다. 얼굴무늬수막새에 웃는 기와가 자연스레 겹쳐집니다. 즐겁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절로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잔잔한 감동이 일어납니다. 얼굴무늬수막새를 새롭게 탄생시킨 이봉직 시인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모든 게 상상력입니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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