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가상승 눈치보는 임단협…월급 동결땐 불만 일듯

"또 올랐네. 이젠 칼국수도 못 사먹을 것 같아!" 포항 모 고교생 A양은 14일 학교 앞 칼국숫집 가격표를 보고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올 초 3천원이던 칼국수 한그릇값이 500원씩 두번의 가격인상을 거쳐 이날 4천원으로 매겨졌기 때문이다.

5월 들어 물가 상승세가 더욱 심해지면서 생활비 부담이 부쩍 늘어나자 서민 가계에 비명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소비자 물가를 좌우하는 생산자 물가까지 급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어 장기전망까지 어두운 실정이다. 원자재가 인상에서 출발한 물가불안이 '제품가 인상→임금인상→제품가 인상'의 악순환으로 연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에서는 올 임단협 걱정이 태산이다.

◆면(麵)류 30% 인상=포항 대형 아파트 단지 내 상가나 시내에서는 칼국수 한그릇에 5천∼5천500원씩 받는다. 자장면·짬뽕·우동 같은 밀가루 음식도 올 들어 가격이 크게 올라 5천원 이하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대부분 올 들어서만 20~30%씩 인상됐다.

밀가루가 들어가는 식료품도 하나같이 폭등세다. 어린이들이 주로 먹는 과자값이 대표적 사례. 주부 김은정(38·포항 두호동)씨는 "가격이 그대로면 양이 크게 줄었고, 양이 그대로면 값이 30% 이상 올라 간식비가 가계에 큰 부담"이라고 했다. 주부 윤미영(41·창포동)씨도 "공산품치고 값이 오르지 않은 물건은 하나도 없다. 남편 월급은 그대로인데 가계 지출은 두배 가까이 늘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생활비 두배 이상 증가=소비자 물가가 폭등하자 빠듯한 용돈으로 버텨온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회사원 이인권(46·포항 대이동)씨는 "기름값이 1천800원대에 이르고 라면·자장면·국밥 등이 다 올라 당장 먹고사는 게 어려울 지경"이라고 했다. 중학생 김나영(15)양도 "학용품값이 모두 올랐고, 교복·체육복값까지 올라 작아진 옷을 그대로 입거나 수선해서 입는 친구들이 많다"고 푸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지난해 2.5%보다 훨씬 높은 4.1%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철근값 배 가까이 폭등=유류·곡물·철강값은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국제유가는 13일 한때 배럴당 127달러에 육박해, 매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조만간 주유소의 휘발유 ℓ당 가격이 2천원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철근 메이커들은 고철값 폭등을 이유로 14일을 기해 올해 다섯번째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급기야 지난해 말 t당 50만원대이던 철근값이 이날 95만∼97만원대로 올랐는데, 업계는 여름이 가기 전에 100만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다시 가격인상을 예고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철·철광석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워낙 올라 그나마 반영폭을 줄인 것"이라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쓰촨성 지진이 철강을 비롯한 주요 제품 가격상승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토목업을 하는 A사장은 "철근 공장 출하가가 95만원이라지만 품귀현상이 심해 중소형 업자들의 경우 현금 들고 가도 100만원은 넘게 줘야 한다"며 "지금 하는 작업 대부분이 t당 60만원 기준으로 지난해 수주해 놓은 공사여서 일을 하면 하는 대로 적자"라고 했다.

◆임단협 걱정 태산=생산자·소비자 물가 폭등세는 이달 말부터 본격화될 주요 기업의 노사 간 임단협 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포항 한 업체 노조간부는 "물가가 올랐으니 최소 그 이상의 임금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업체의 한 임원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이 압박받고 있어 올해는 동결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의 사장은 "직원들의 임금 인상폭 이상으로 제품가를 올려야 회사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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