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지방 출신 인사들은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인수위가 각 부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보고를 받지 않아 문제 제기했더니 한 인수위원이 "대통령직인수위는 중앙정부의 업무를 인수하는 것이지 지자체의 업무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다"고 잘랐다는 것. 이후 '지방 의견 무시'는 인수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됐다.
그 결과는 자명했다. 인수위에서 채택한 주요 국정과제에 소위 '지방 프랜들리' 정책은 거의 없었다. '5+2 광역경제권 구상'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수도권과 차별화된 지방 주택정책을 입안하려 지역 관계자들이 인수위의 문턱이 닳을 정도로 찾았으나 헛수고였다.
인수위를 취재했던 각 지역 기자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각종 분과 위원회가 있었지만 지방 정책을 담당하는 분과를 찾을 수 없었던 것. 온갖 수소문을 한 결과 인수위가 있던 금융연수원이 아니라 인근에 위치한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에서 담당하는 것을 알았으나 정작 지방 정책은 주요 국정과제에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지방이 얼마만큼 홀대받는지는 청와대의 직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지방 정책을 담당하는 곳은 국정기획수석실 소속 국책2과제비서관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서관 1명에 행정관 9명. 그것도 지방정책은 수많은 업무 중에 하나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사실상 해체됐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발위)도 없어질 운명이었으나 국회가 겨우 지켰다. 하지만 청와대는 균발위가 각 부처에 업무 협조를 하라고 요구하지 못하도록 손발을 잘라 놓은 상태다.
지방정책을 담당하는 인사들의 면면도 이해하기 힘들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상철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표적인 중앙집권주의자로 꼽힌다. 행정수도 이전 반대에도 앞장섰다.
지방정책의 컨트롤타워격인 곽승준 국정기획수석도 지방분권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업무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정책보다 수도권 규제 완화와 공기업 민영화에 방점이 찍혀있다.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하면 이명박 정부의 '지방 홀대'는 더욱 분명해 진다. 지방분권주의자였던 김병준 초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과 성경륭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지내는 등 지방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장관의 면면도 마찬가지다. 각 지역에서 활동한 인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참여정부 시절 지방에 살다가 올라온 주말부부가 많아 관사를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었던 그때 그 시절은 '아! 옛날' 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전국 시도지사를 만나 '나는 지방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말을 신뢰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분위기다.
서울시장이란 직책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에 앞장섰다. 대통령이 되려 했던 당시 이 서울시장으로서는 모험에 가까웠다.
또 이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 곧바로 서울시장을 국무회의에 참석시키는 '특별 대우'를 했다. 서울의 논리가 국정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는 조치라 할 수 있다. 물론 시도지사회의를 만들었으나 격주로 만나는 서울시장과 1년에 2번 만나는 시도지사는 격이 다르다.
대통령이 중앙집권주의자냐 지방분권주의자냐가 별문제가 아닐 수는 있다. 문제는 대통령제 속에서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는 관료들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5년간 노무현 정부에 코드를 맞췄다가 한달 만에 이명박 정부로 코드를 바꿨다.
이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관료를 보는 눈은 다른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은 초기에 관료를 극도로 불신했으나 말기에는 관료만 믿었다. 공식 행사에서 여러 차례 관료가 국가의 기둥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으며 공무원의 자세를 수차례 문제 삼았다. 인사를 하려 검증절차를 거치면 대다수가 관료라고 불만을 표출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 대통령도 입안의 혀처럼 코드를 맞추는 공무원을 결국 신뢰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 대통령의 혼을 빼는 능력만은 어느 세력보다 뛰어나다는 지적이다.
관료들의 대통령 혼 빼기 작업은 지방정책 부문만 놓고 보면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혁신도시 원점 재검토''5+2 광역경제권 구상 폐기 검토' '수도권 규제 완화' '선벨트 구상' 등이 그것이다. 지방과 수도권이란 '다윗'과 '골리앗'에게 시장에서 경쟁하라는 논리도 대통령 코드 맞추기의 일환일 수 있다.
아울러 참여정부 정책 뒤집기는 각 부처에서 시도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지방분권을 주창한 마당이라 당연히 지방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지방이 발전해야 나라가 발전한다'(시도지사회의에서 이 대통령 언급)는 생각을 이 대통령이 갖고 있다면 지방정책 라인을 재정비하고, '영혼 없는 공무원'이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도록 내몰 위험성이 있는 언급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 지역 한 국회의원은 "세종시 때문에 충청지역이 돌아서고 혁신도시, 선벨트, 수도권 규제 완화 때문에 지방이 돌아서면 이명박 정부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구 지역 한 국회의원도 "18대 원 구성이 되기도 전에 쇠고기 협상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추락했는데 반지방 정책 남발로 지방의 이반까지 부르면 참여정부보다 더 빨리 레임덕에 빠져 한반도대운하 등 정작 하고 싶은 정책을 펼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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