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와! 버스다~ 짝짝짝" 오지마을의 천지개벽

배타고 들어오던 안동 기느리 마을 하루 2회 버스운행에 전주민 환호

▲ 15일 안동 기느리마을에 들어온 시내버스. 마을이 생기고는 처음이다. 주민들이 모두 나와 만세를 불렀다.
▲ 15일 안동 기느리마을에 들어온 시내버스. 마을이 생기고는 처음이다. 주민들이 모두 나와 만세를 불렀다.

15일 오전 8시 30분.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멀리서 시내버스가 '빵빵' 경적소리를 울리며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주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박수와 함께 만세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새벽잠을 설친 몇몇 어르신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안동 도심과 불과 10여㎞, 면 소재지와는 2㎞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도심 속 섬마을'로 불려왔던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 기느리 마을에 대중교통인 시내버스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다.

안동시가 몇해 전 마을 산길을 뚫고 주차장과 승강장을 설치한 후 시내버스 회사들과 협의를 거쳐 하루 두차례씩 버스를 운행키로 해 도심과의 소통을 염원했던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 풀린 것이다.

바깥 세상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오로지 산길과 뱃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은 이날의 '역사적 사건'을 기쁨과 흥분 그리고 설렘과 회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휘동 안동시장과 김경동 시의원, 송병기 면 이장협의회장, 박능덕 면 노인회장 등이 참석해 함께 기쁨을 나눴다.

이 마을은 지난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지역에 도로가 뚫리고 전기와 전화가 가설되는 등 현대화 물결의 혜택 속에서도 고립을 면치 못했다. 때문에 70여명의 주민들은 지금까지 낙동강 상류 지천인 마을 앞 반변천을 건너는 뱃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 앞에 버티고 선 덤산 정상에 오르면 아파트 숲으로 가득한 용상동과 안동대가 눈앞에 보이지만 이들에겐 머나먼 바깥 세상일 뿐이었다. 차를 타기 위해서는 2㎞의 산길을 걸어야만 했기 때문에 가까운 강을 건너 국도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게 수월했다.

홍수로 물이 불어나면 어김없이 산길을 걸어다니거나 사나흘을 고립상태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 마을 노인회장 김형동(73) 할아버지는 "길이 없어 산길 물길을 이용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살아생전 이렇게 집 앞마당까지 시내버스가 쑥 들어오는 게 거짓말 같다"고 했다.

특히 외부와의 교통단절로 주민들은 애써 가꾼 농산물마저 제값을 받고 팔지 못했다. 임영순(63) 부녀회장은 "아낙들이 내다팔 농산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뱃길을 이용해 시내 장을 봐야 했다"며 "이제 버스가 드나들어 장보기가 수월해진 게 너무 고맙다"고 활짝 웃었다.

이날 기념식이 끝나고 8시 50분쯤 시내버스가 마을을 떠날 때 이 마을 어르신 20여명이 버스에 올라타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아무 걱정 없이 도시 나들이를 하고 오후 버스를 타고 마을로 다시 돌아온 이 날이 기느리 마을 주민들에게는 '천지개벽한 날'이나 다름없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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