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가장 똑똑한 컴퓨터 '깊은생각'이 있었다. 초지성체는 깊은생각에게 물었다. "삶, 우주,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은 650만년 동안의 긴 연산 작업에 들어간다. 이윽고 650만년 후 깊은생각은 '42'라는 뜬금없는 숫자를 내놓는다.
황당해 하는 지성체들에게 깊은생각은 시큰둥하게 말한다. "질문이 애초에 잘못됐기에 답도 잘못될 수밖에. 그 답을 얻으려면 '궁극의 질문'이 필요하다." "그 궁극의 질문은 뭐지?" "그건 나도 몰라. 궁극의 질문을 알아내려면 나보다 더 똑똑한 컴퓨터가 있어야 해." 그리하여 우주 최고의 컴퓨터가 태어났다. 그 이름은 '지구'였다.
지구의 정체는 초지성적 존재가 만들어낸 실험용 컴퓨터였다? 이 같은 설정은 영국작가 더글러스 애덤스(1952~2001)가 1979년에 출판한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주요 모티브입니다. 5부작으로 된 이 소설은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시니컬한 농담으로 가득한 SF소설입니다. 침대 위에 누워 낄낄거리며 책장을 넘기다가도, 인간 본질과 세상사를 관통하는 철학적인 성찰에 자세를 추스르게 만드는 '포스'를 책에서 발견합니다.
궁극적 질문을 알아내기 5분 전, 지구는 어이없게 폭파되고 맙니다. 은하계 초공간 우회 고속도로를 내는 데 거치적거린다며 은하계 초공간 개발위원회가 레이저를 쏴 지구를 '철거'해 버린 겁니다.
소설은 지구 철거 10여분 전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아서 덴트의 집도 우회로 건설 때문에 철거 위기에 몰립니다. 집을 중장비로 밀겠다는 공무원들과 아서 덴트가 옥신각신 싸우는데, 그의 친구 포드 프리펙트가 등장합니다. "정체를 밝히자면 나는 외계인이다. 지구가 곧 폭파되니 지구를 떠나야 된다." 결국 지구는 철거되고 아서 덴트는 은하계를 방랑하는 히치하이커가 됩니다. 은하계 히치하이커 안내서에는 지구가 짤막한 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무해함' 우리 지구가 '대체로 무해한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니!
지구 생명체들의 입장에서는 절대 '대체로 무해할 수 없는' 지구촌에 요즘 변고가 많습니다. 사이클론으로 미얀마에서 10만명이 죽고, 중국 쓰촨에서 강진으로 수만명이 희생됐습니다. 국내에선 광우병 파동에 이어,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인 조류인플루엔자(AI)가 예사롭지 않은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잉여 생산과 대량소비를 강요하는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아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다른 한쪽에서는 곡물을 자동차 연료로 쓰겠다는 탐욕이 번집니다.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경제는 침체에 빠져듭니다. 자본주의 중추국이라는 미국은 자국의 경제를 살리겠다며 연일 막대한 달러를 찍어 뿌려대 세계적 인플레이션 도미노를 부추깁니다. 자국의 고통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구가 폭파 위기에 처한 줄도 모른 채, 제 집 철거 걱정에 빠진 아서 덴트에게서 인류의 모습을 봅니다. 소설에서와 달리 인류에겐 히치하이킹할 우주선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쯤 깨달을까요.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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