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초파일, 봉암사 山門 열리던 날…

▲ 초파일에 산문을 개방한 지난 12일 봉암사에는 방문한 불자들로 북적였다.
▲ 초파일에 산문을 개방한 지난 12일 봉암사에는 방문한 불자들로 북적였다.

1년에 단 하루다. 봉암사(경북 문경 희양산 소재)는 사부대중의 발걸음을 매년 4월 초파일에만 허락한다. 봉암사 품으로 새와 다람쥐, 바람 등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지만 속인들은 물론이고 '먹물옷'을 입은 수행승조차 함부로 드나들 수 없다. 전국에서 문턱이 제일 높은 절집인 셈이다. 때문에 해마다 초파일 산문이 열리면 전국에서 봉암의 품을 찾아 몰려드는 불자와 속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날인 지난 12일, 선정의 산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봉암사에는 전국에서 3만여명의 불자들이 몰려들었다. 방문한 불자들을 위한 공양주 보살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평소 3명의 보살들이 있지만 이날만은 가은신도회에서 50여명, 문경우체국에서 30여명이 공양 준비에 나섰다.

신도회는 1년에 한 차례 초파일을 위해 김장철 소금에 절인 흰 배추김치를 장독에 담아 땅에 묻어둔다. 며칠 전부터 이걸 꺼내 양념에 버무리고 미나리·오이·무채·묵나물·콩나물 등 갖은 채소를 구입해 준비한다. 심지어 도라지 밭을 통째로 사서 다듬기도 한다.

방문객이 많다 보니 절에서 준비한 쌀의 양도 엄청나다. 올해는 쌀 15가마로 밥을 지었다. 쌀은 문경 시내 4곳의 방앗간에서 쪄서 배달했다. 대략 1만여명이 먹을 수 있는 공양. 미처 공양에 참석하지 못하는 세인들을 위해 쑥백편 6천여개도 준비했다. 하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절반이 넘는 세인들이 '절밥'을 얻어먹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날 대웅보전 앞에는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등(燈)을 올리려는 불자들이 길게 줄 지어섰다. 옆으로는 새재 다례원 다인(茶人)들이 부처님에게 헌다례하듯 따스한 차 한잔으로 세인들의 긴장된 마음을 녹였다.

경기 수원에서 봉암사를 찾은 정심향(김정미·64) 보살은 "이 곳에 들어서면서 세찬 바람이 잠잠해졌다. 마치 부처님의 품에 안긴듯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다"고 했다.

봉암사는 한국불교의 상징이요 성지이며 한국불교의 선풍을 일으킨 곳이다. 성철을 비롯해 청담·자운·향곡·월산·혜암·법전 등 내로라하는 큰스님들이 젊은 시절 이곳에서 용맹정진에 돌입했다. 이들은 해방 직후인 1947년 한국불교를 바로잡자고 다짐하며 수행에 들어갔다. 이것이 '봉암결사'(여름과 겨울 3개월 안거는 결제, 9개월 이상의 안거를 결사라 한다)다.

산문을 아예 걸어 잠근 것은 1982년. 관광객들이 몰려와 수행에 지장을 주자, 수행승들이 지팡이와 곡괭이를 들고 희양산을 막았다. 전국에 딱 하나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도량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봉암사는 조계종의 특별수련원이 됐다. 봉암사는 종정만 3명을 배출했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도록 세상을 열어 놓았다. 참 진리를 추구하고 참된 삶을 살아라"는 선원장 정광 스님의 봉축법어가 산문을 나서는 마음을 꾸짓는 듯하다.

문경·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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