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골'은 아이처럼 막 자라는 마을이란 뜻이다.
아이의 태를 벗기도 전에 이미 아이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동심은 힘든 세상을 이겨내는 신경안정제고 진정제다. 그건 사실과 진실의 영역이 아니다. 판타지, 환상의 세계다.
아이가 "엄마, 바닷물은 왜 짜?"라고 물었다. 잘 아는 엄마가 "80%가 염분으로 구성됐고, 염분은 염소, 나트륨, 마그네슘 등 6가지 원소로 이뤄져 있으며 그것이 짠맛을…"이라고 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옳은 답은 아니다. 엄마가 소금맷돌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파도가 바위를 쳐서 바위가 너무 아파 울어서 그런 거야"라고 했다면 바다를 대하는 아이의 정서는 얼마나 더 풍부해졌을까. 동심은 그런 세계이다. 사실이 아닌 순진무구한 심상이 춤추는 세상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아이들이다. 넓게 보면 동심을 가진 모든 이들이 포함된다. 동막골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영화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다. 이 마을은 이념도 파괴도 고통도 모두 잠재우는 별천지고 전쟁의 단독강화(單獨講和) 지역이다. 인민군의 해방정신도, 국군의 반공정신도, 미군의 자유주의 정신도 필요 없다. 그들에게는 겨울을 날 고구마와 감자만 있으면 된다. 얼마나 간단한 삶의 공식이고 여유인가.
이들의 말에는 어떤 미사여구나 과장도 없다. 인민군 리수화가 동막골의 영도력을 묻자 "머를 마이 멕이야지(무엇을 많이 먹여야지)"라는 촌장의 말은 촌철살인이다. 보이지 않는 이념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위대한 영도자에게 보내는 통렬한 조롱이며, 보이지 않는 앞날을 위해 현재를 피 흘리는 어른들에게 보내는 비난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정신나간 처녀 여일이다. 그녀는 동심의 결정체다. 그리스 신화 속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이고, 맑은 계곡에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선녀와 같은 존재다.
총에 맞아 "마이(많이) 아파"라는 말은 모든 비극성을 압축해 전해준다. 시인 문인수는 '수류탄과 가락지'라는 시로 여일의 아름다운 심성을 얘기한다. 수류탄이 뭔지, 폭탄이 뭔지도 모르는 여일이 안전핀을 뽑아버렸다. 물음표같이 생긴 신기한 것이다. 그것이 죽음의 표시라는 걸 알길 없는 그녀는 가락지인 줄 안다. 연정이 피어나 사랑하고 가락지로 맺어져 혼인하는 백년가약의 징표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 놀란 전쟁의 표정이 순식간에 녹아든다.
가락지는 초경과 연결된다. 복부에 흘러내리는 죽음의 피를 처녀의 초경으로 그렸다. 가락지의 꿈이 그렇게 무너진 것이다. 채 피어나지 못한 애틋한 꿈의 죽음, 전쟁의 광포성이 깊이 느껴진다.
화가 권기철은 활짝 웃는 아름다운 동막골의 한때를 눈처럼 내리는 팝콘 속에 넣었다. 팝콘은 들국화와 함께 영화에서 가장 잘 그려낸 동심이다. 포탄이 터지는 전쟁의 공포를 명절날 뻥튀기 기계 앞에 귀를 막은 아이들의 긴장감으로 희화화한 장면이다.
"전쟁이 뭐야?"라고 물으면 "그건 말이야, 팝콘이 터지는데 작대기를 들고 멧돼지를 잡는 것이란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웰컴 투 동막골'이 그려내는 전쟁의 판타지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웰컴 투 동막골(2005)
감독:박광현
출연:정지영, 신하균, 강혜정
러닝타임/등급:133분/12세 관람가
줄거리:1950년, 세상은 전쟁으로 북새통이지만, 태백산맥 절벽 속에 자리 잡은 동막골은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른다. 미친 처녀 여일(강혜정)이 패퇴하던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일행을 만나 동막골로 데려온다. 그때 길을 잃은 국군 표현철(신하균) 일행도 촌장 집에 오면서 양편은 총을 겨누고 대치한다. 거기에 추락한 전투기의 미군 스미스(스티브 태슐러)까지 가세해 동막골은 국군, 인민군, 연합군의 대표전이 벌어질 태세로 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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