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천차만별…가전제품 가격의 비밀

똑같이 생긴 TV, 값 차이 왜 나죠?…매장 따라 '속'은 다 달라요

이사를 앞두고 LCD TV를 장만한 강민수(38)씨는 구입까지 적잖이 애를 먹었다. TV를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과 백화점, 대형마트 등을 뒤졌지만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 백화점은 환불이나 교환이 쉬울 것 같지만 가격이 부담스럽고, 홈쇼핑이나 인터넷은 못 미더웠다.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비슷한 모델이 워낙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어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대형마트나 가전 양판점에서 파는 제품은 품질이 떨어진다는 소문까지 들은 터라 고민은 깊어지기만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강씨는 인근 가전 매장에서 기획상품으로 나온 제품을 백화점보다 40만원 싸게 주고 구입했지만 찜찜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그는 과연 제대로 TV를 구입한 것일까. 정말 소문대로 유통경로에 따라 가전제품의 품질이 천차만별일까.

◆태생이 다르다

직장인 오현수(45)씨는 3개월 전 큰마음먹고 TV홈쇼핑을 통해 차량 내비게이션을 구입했다. 홈쇼핑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이라는 설명에 서둘러 45만원을 주고 구입한 오씨가 들뜬 마음으로 물건을 받아든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오씨는 거의 기능이나 외관이 똑같고 모델명만 다른 제품을 인터넷에서 5만원이나 싸게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싸게 주고 샀다는 생각에 화가 난 오씨는 업체에 항의했지만 "새 제품은 대형마트나 양판점을 통해 판매되는 제품으로 제조시기, 유통구조, 판매 채널의 특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처럼 비슷하게 보이는 가전제품이라도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각 유통경로마다 '전용 모델'이 있는 탓이다. '전용 모델'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대리점, 홈쇼핑, 대형가전매장, 인터넷 쇼핑몰 등 특정 유통업체에만 공급되는 제품을 말한다. 얼굴은 같지만 능력이나 성격이 다른 쌍둥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삼성 파브(PAVV) 107㎝(40인치형) PDP 텔레비전인 '파브 SPD-42C91HD'와 'SPD-42C92HD' 두 모델을 비교해보자. 두 제품은 크기나 모양이 거의 똑같다. 겉으로 봐서는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SPD-42C91HD는 백화점 전용 모델, SPD-42C92HD는 대형 양판점이나 대형마트 모델이다. 모델명의 숫자 하나 차이지만 제품 값은 훌쩍 벌어진다. 판매가를 보면 백화점 전용 모델은 120만원, 대형 가전 양판점 모델은 108만원이다. 백화점 쪽이 적지 않게 비싼듯 싶지만 두 제품의 사양을 들여다보면 납득이 간다. 백화점 전용 모델의 경우 울트라 데이라이트, 트루 컬러 등 고급 기능이 추가돼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매장에서 파는 제품이라도 전용 모델과 공용 모델은 가격이 다르다. 대형마트 전용 모델인 삼성 세탁기 SEW-PK102NL은 이마트에서 33만원에 살 수 있지만, 비슷하게 생긴 공용 모델 SEW-PA106NR은 38만원을 줘야 한다. 물론 전용 모델의 내부창은 투명하지 않고 겉 색깔도 다르지만 다른 기능은 거의 비슷하다. 에어컨도 마찬가지. LG 에어컨의 경우 홈쇼핑용인 LP-C155NBRFA는 가격이 169만원, 일반판매용인 LP-C155WRFA는 177만원이다. 그러나 홈쇼핑용 모델에는 청정케어기능이나 백금필터, 대화면 LCD, 취침 운전 기능 등이 빠졌고 대신 청정필터시스템과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 필터, 알러지 원인물질 제거 기능 등이 포함됐다.

이처럼 전용 모델과 일반 모델의 가격이 다른 이유는 판매자가 제조자에게 일부 기능을 빼는 대신 가격을 낮춘 '맞춤 상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통 경로별로 판매가격이나 장려금, 구매 수량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본 공급가격도 조정된다. 더구나 대형마트나 홈쇼핑은 제조사로부터 대량으로 물건을 들여와 값싸게 파는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백화점보다 매입 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유통업체에 따라 제조사와 유통업체가 합의를 보는 기본공급가가 달라지게 되고, 각 공급가에 매장 운영료나 마케팅 비용, 마진 등이 더해져서 제품 가격이 정해지게 된다"며 "비록 전용 모델이 몇 개에 불과하더라도 소비자로서는 비슷한 일반 모델을 수십만원씩 더주고 살 리 만무하기 때문에 판매는 전용 모델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같은 모델은 같은 품질

가격만 놓고 보면 온라인 쇼핑몰이나 할인마트가 저렴하다. 그러나 품질에 대한 우려가 소비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제품의 내구성이나 부속품의 질이 떨어질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괜히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 동일한 모델일 경우 유통업체에 따라 품질 차이가 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제조사가 수백가지에 이르는 상품을 일일이 판매자의 요구에 맞게 만들어줄 수도 없을뿐더러 한 생산라인에서 여러 제품을 만드는 것은 수지 타산에도 맞지 않다. 결국 제품 가격의 차이는 유통업체가 마진을 얼마나 붙이느냐에 달려있다. 실제 관련업계에서는 전용 모델은 전체 판매 제품의 10~15%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백화점 제품이 인터넷 쇼핑몰 제품보다 고급스럽고 좋아보이는 것은 선입견이라는 얘기이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모델명이 같은 제품은 동일한 제품"이라며 "구입처에 따라 AS를 받을 수 없다거나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전용 모델에 한해 일부 기능이 빠졌거나 내·외부 마감재, 디자인 등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값이 싼 만큼 제품의 기본 구성부터 디자인, 재질의 차이를 감수해야 한다. 각종 사은품을 얹어주는 홈쇼핑 제품도 재고품이거나 일반 모델과 기능이 차이 나는 경우도 많다.

대구시내 한 백화점 관계자는 "요즘은 가격 정보가 공개돼 있기 때문에 유통과정에서 폭리를 취하기 힘들다"며 "재고 물량을 소진하기 위해 제조사에서 저가에 구제품을 대형마트나 홈쇼핑으로 넘기는 경우도 있고, 백화점에서 단종되는 물품을 처리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 파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안 속고 잘 사려면

돈을 더 내더라도 고급 외장에 다양한 기능이 있는 제품을 살지, 아니면 저렴하고 실용적인 제품을 살 것인지를 선택하는 게 우선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모델을 찾아 구입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신 기능이나 보다 세련된 디자인을 원한다면 백화점으로 가는 것이 좋다. 백화점 전용 모델은 일반 모델보다 한층 고급스러운 경우가 많다. 다양한 옵션이나 치장 대신, 실용적이고 실속 있는 제품을 원한다면 대형 가전 양판점이나 대형마트 등을 찾으면 된다. 싸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싼 제품을 사고 나서 정작 필요로 했던 기능이 없을 수도 있다.

모델명을 정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다. 모델명에는 해당 제품의 대략적인 정보가 모두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매장별로 가격을 비교하는 데도 가장 필수적인 정보다. 모델명은 아무리 비슷하다 하더라도 한두글자에 따라 기능이나 색상이 달라진다. 단순히 '107㎝형 LCD TV'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간 바가지 쓰기 십상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홈쇼핑 방송 중에는 기본정보인 모델명을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제품 상세 정보를 찾아보는 게 좋다.

혼수용 제품의 경우 조건을 잘 따져봐야 한다. 혼수 가전은 여러 품목을 한꺼번에 구입하기 때문에 구모델에서 가격을 더 받고 신모델에서 할인해 주는 식으로 마진을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중 대형마트 관계자는 "모델명이 같더라도 실제로 판매되는 가격은 기획전이나 특판 같은 행사 때 수시로 바뀔 수 있다"며 "혼수가전 패키지의 경우 인기 품목은 몇개 없고 재고품이나 비인기품을 끼워파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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