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시인 조지훈이 1968년 5월 17일 타계했다. 토혈이 있어 병원에 입원했지만 병이 너무 늦었다. 당시 48세. 그는 1946년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시집 '청록집'을 낸 것을 계기로 청록파 시인으로 불렸다. 또한 국학자요, 논객이었고, 지사였다.
시인 신경림은 책 '시인을 찾아서'에서 조지훈에 대해 '멋과 지조의 시인'이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와 이승만과 자유당 정부, 박정희의 독재정치에 저항한 지조의 삶을 살았다. 그를 '선비'로 표현한 것은 지조와 기품을 가진 집안내력에서 찾을 수 있다. 한일강제병탄 때 자결한 증조부와 6·25때 북한군에 저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부, 거기에다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조헌영의 납북. 그가 본격적으로 민족의 역사와 현실사회로 뛰어든 계기는 6·25를 거치면서부터였다.
조지훈은 1920년 경상북도 영양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동탁.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에 '고풍의상' '승무' 등의 시로 문단에 데뷔, 민족적인 서정을 표현했으며, 고려대학교에서 한국학에 대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경기도 양주군 마석리에 안장되었다. 영양군 일원면 주실마을에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1980년 비상계엄령 확대 발표 ▶1973년 북한, 국제보건기구(WHO) 가입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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