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장님] 영양읍 무학리 이장 이상국씨

산천 아름다워 무작정 귀농 11년만에 의엿한 농부 정착

영양군 영양읍 무학리는 읍 소재지만 산간오지 마을이다. '옛날에 무덤을 파는데 학(鶴)이 날아가서 마을 이름을 무학(舞鶴)이라 지었다'는 전설처럼 산이 많고 산림이 울창한 곳이다. 교통이 불편해 찾는 사람이 드문 무학리의 주민은 5가구 11명.

아직은 아침 공기가 차가운 농사철. 요란한 경운기 소리가 적막한 산촌의 아침을 열고, 주민들은 저마다 하우스에서 키운 고추모종 관리와 정식 작업에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학리 이장 이상국(55)씨. 그는 원래 이 마을 출신이 아니지만 이곳에 귀농한지 11년이 넘었다. 도시 생활이 싫어 1997년 부산에서 하던 포목점을 정리하고 두남매와 목돈 1억3천만원을 들고 들어와 시골아저씨로 살고 있는 것이다.

"처음 와서 한해 동안은 집을 짓느라 텐트 생활을 했지요." 농사를 지어본 경험도 없이 무작정 농촌에 들어온 그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8천만원을 투자해 500㎡짜리 버섯재배용 하우스를 짓고 농사를 시작했으나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2년 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나머지 돈 7천만원을 들여 흑염소 150마리를 매입, 사육했지만 이마저 중국산 흑염소 수입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또 실패했다. 그래서 그는 귀농 희망자에게 꼭 충고의 말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도시 사람들이 귀농하여 실패하는 원인은 경험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초기에 욕심을 내어 한꺼번에 가진 돈을 모두 투자하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귀농해서 무슨 농사를 짓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교육도 받고, 초기 투자를 다시한번 검토하면서 여윳돈을 남겨 두라"고 조언한다.

마을 주민들과의 융화도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귀농자가 마을 주민들과 한 가족처럼 지낼 때 농사 경험이 풍부한 이웃사람들이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할 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처음 귀농했을 때는 토박이 주민들이 경계하면서 깊은 정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을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고, 시골 농부가 된지 9년이 되던 2006년에는 선거직 이장으로 뽑혔다. "마을 사람들이 제 가족을 주민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게 된 것이지요."

처음에는 객지에서 들어온 사람이 마을 이장이 되자 영양읍 주민들이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 이장을 맡긴 적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무학마을에는 일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느냐'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고 한다.

매월 급여 22만원을 받는 파격적인(?) 감투를 쓴 그는 그러나 묵묵히 주민들과 군정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 왔다. 눈이 오는 날이면 설경에 취해 12㎞ 떨어진 읍사무소까지 걸어서 갈 정도로 영양의 산천을 사랑하게 되었다.

무학리에 온후 버섯재배와 흑염소 사육에 실패했지만 요즘은 부부가 야생화로 맛사지 팩을 만드는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청정지역 두메산골에서 자란 청정 야생화와 산뽕·쑥·다래·칡 열매를 채취해 장독에서 100일 이상 숙성시켜 무공해 맛사지팩을 제조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나온 천연재료인 야생화를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피부 노화방지 효과가 탁월합니다. 아침이나 저녁 시간 20분만 투자하면 예쁜 피부를 간직할 수 있어요." 그는 비교적 젊은 이장답게 모든 활동이 적극적이다.

요즘은 평소 익힌 한자와 서예, 한학 공부에도 관심이 많아 지난해 한자사범자격증을 취득한 후 영양읍에서 한자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영양군문화원에서 주최한 충효교실에서 4회에 걸쳐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무학리로 들어온 이래 박수근(56)씨 가족이 인천에서 시계점을 운영하다가 1998년 귀농해 고추농사를 짓고 있으며, 최영삼(42)씨 가족도 충청도에서 열쇠 수리점을 운영하다가 이곳에 와 복숭아 과수원과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신처럼 지도상에서 제일 골짜기라고 생각되는 곳을 무작정 찾았고, 산수 좋고 인심 좋은 영양이 마음에 들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육지 속의 때묻지 않은 섬, 영양 무학리를 아시나요?" 이 이장의 무학리와 귀농생활 자랑은 밤늦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영양·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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