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여중이 최근 교사와 학생이 함께 하는 문학기행을 가졌다. 이들이 찾은 곳은 충북 옥천의 '정지용 문학관'. 이 학교는 8년째 문학기행 행사를 갖고 있다. 단순한 여행보다 '문학'이란 주제로 현장에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과 몸으로 느껴보자는 취지이다. 체험 교사의 기행문을 통해 문학기행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정지용'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이다. 어른들은 지금도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의 후렴구가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느껴지는 '향수'의 시인으로, '호수'라는 짧은 시를 국어 교과서에서 본 중학생들은 '보고픈 마음 호수만하니/ 눈 감을 밖에'라는 마지막 구절이 저절로 떠오르게 하는 이름이다.
우리는 이 이름을 가슴에 담고자 먼 길을 떠났다. 하양여중 문예동아리 '장미와 소나무' 학생과 선생님들이 함께 한 이 여행을, 5월의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이 더욱 축복해줬다.
6일 오전 8시30분. 모두들 약속시간 전에 경산문화회관에 나와 있었다. 미소 띤 얼굴로 서로 인사하는 얼굴에는 기대와 설렘이 묻어 있었다. 아침거리를 준비한 나는 겨우 시간 안에 도착했지만 결국 지각생이 되고 말았다.
8년 전, 박목월 시인의 생가를 방문한 것으로 우리들의 문학 여정은 시작됐다. 책 속에 갇힌 작품과 시인들의 삶을 그곳에서 풀어주고 싶었다. 우리가 좀 더 가야만 느껴지고, 느껴지면 이해되고, 이해되면 가슴에 오롯이 새겨지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칠곡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버스는 곧장 우리 고장을 넘어 충북 옥천으로 내달렸다. 차창 밖 5월의 푸르름은 이내 버스 안으로 옮겨진다. 학생들의 재잘거림과 귓가의 음악을 배경으로 푸른 하늘은 더욱 눈부시다. 준비해 간 문학 기행 안내지를 김홍덕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한다. 두루마리 웃옷에 둥근 안경, 단정하게 넘긴 머리카락. 시인의 사진을 보며 학생들은 곧 있을 만남을 준비한다.
오전 11시30분.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소담스런 초가집이 보였다. 정지용 시인이 살았던 옛집인가 보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우리들은 유년시절 정지용 시인이 밟고 다녔다는 청석 다리에 우리의 발을 살포시 놓았다. 감수성 강한 구양회 선생님은 오늘도 역시 몸으로 말한다. 이리저리 만져 본다. 그리고는 이내 대어(大魚)를 낚은 감동에 사로잡힌다.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시인이 살았던 터에 복원된 집이라 아쉬움이 남았다. 가옥 구조와 마당을 보며 시인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생가 옆에 위치한 문학관 안에서는 정지용 시인이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40명이 들어가는 그리 넓지 않은 교실에서 안내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학생들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을 안내지에 열심히 메모한다. 한 학년이 함께하는 체험학습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경청하고 메모하는 모습에서 이 여행의 목적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탄생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에 비해 남아 있는 자료는 많지 않았다. 더욱이 시인의 마지막을 추정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과 월북 작가라는 오해로 인해 가슴이 아팠다. 누구나 가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향토적인 언어를 사용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우리들의 고향으로 만들어 준 시인의 삶은 개인의 슬픔이요, 우리 근대사의 슬픔이었다. 그나마 올해 5월16일부터 18일까지 '제21회 지용제'가 열린다는 안내 선생님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삶의 한 부분을 내려놓고, 사제동행과 문학 기행이라는 큰 이름 앞에 모두들 하루의 시간을 함께 했다. 학교에서도 버스비를 지원한 이 기행에서 우리 학생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돼 다시 이곳을 여행할 때, 지금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함께 했음과 시인의 이름, 그리고 시인의 아름다운 작품을 떠올리는 그 순간, 이들은 곧 적극적인 문학 독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교육이 무엇인가?'라는 난해한 물음에 직지(直指)의 곧게 뻗은 손가락이 혹 하양여중 문학기행을 가리키지는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이상만(하양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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