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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열정+철저한 준비…'수준별 이동수업' 모범사례

▲ 대건고 1학년 학생들이 수학 시간이 다가오자 자신의 수준에 맞는 반으로 향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대건고 1학년 학생들이 수학 시간이 다가오자 자신의 수준에 맞는 반으로 향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지난 1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월성동 대건고. 쉬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다른 교실로 이동하기 바쁘다. 다음 시간에 있을 수학과목을 수준별로 배우기 위해 자신이 속한 반을 찾아가고 있는 것. A반에 편성됐다는 1학년 김도균(16)군은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교과서 외에 좀 난해한 수능 문제도 가르쳐주는 등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학력수준에 맞는 수업을 찾아간다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대구시교육청이 학교자율화 조치에 따라 기존의 중1~고1을 대상으로 영·수에 한정했던 방침을 전 학년, 전 과목으로 넓힐 수 있도록 학교 자율에 맡겼기 때문. 하지만 대부분 학교들은 어떻게 해야 수준별 이동수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을 모범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두 학교를 찾아 운영 방식을 들여다봤다.

대건고는 학생 수가 1천100명 정도로 대구의 고교 중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이 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력 향상에 힘쓰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이다.

지난해부터 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수에 대해 수준별 이동수업을 해왔던 이 학교는 올해부터 3개반으로 이뤄진 수준별 반을 4개 반으로 늘렸다. 이를 위해선 여러가지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자료. 이 학교는 5년 동안 축적된 진학 자료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반 편성 기준을 잡아 반을 나눴다. 또 여유 교실 2개를 만들고 교과 장학 협의나 교수 자료 제작을 할 수 있는 교수학습지원실도 새로 갖췄다.

특히 교수학습지원실은 자랑거리. 교사들은 이곳에 수시로 모여 모니터를 통해 동료 교사의 수업 내용을 보고 서로 조언을 해주고 각종 자료를 동영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대희 교사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위해선 교사들 간의 협력 체계가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대학의 교수학습지원센터를 벤치마킹해 올해 지원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이곳에서 학년별 협의회와 교과협의회를 통해 일주일에 한차례 정도 정기적인 모임도 갖는다. 이를 통해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워크시트'를 별도로 만들어 교과서와 병행하고 있다.

자칫 소홀하기 쉬운 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배려도 엿보인다. 열정이 있고 경험이 풍부한 교사들을 기초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의 반에 우선 배정했다는 것이다. 이두영 교감은 "사실 학원들이 많지만 기초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다닐 만한 곳은 없고 이런 아이들 가운데 공부하려는 의욕이 있거나 일부 단원에서만 부진한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런 학생들의 지도를 위해선 아무래도 경험이 풍부한 선생님이 적합하다"고 했다.

이 교사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시간표 짜는 것부터 여유 교실이나 출석 체크 등 번거롭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교사들의 의식이나 철저한 준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달성중(달성군 화원읍)은 중학교에선 드물게 체계적인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중1의 경우 수학을, 중2는 영어를 대상으로 3개 반을 상, 중(상), 중(하), 하 등 4개반으로 나눠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수업 방식 도입에는 이봉규 교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여유 교실과 예산이 부족했지만 이 교장의 '하면 된다'는 확신이 크게 좌우했다는 것. 다른 예산을 조금씩 줄여 여유 교실을 만들고 수학, 영어를 가르칠 시간강사도 채용했다. 달성중의 수준별 이동수업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로 구성된 '하반'의 인원을 최소화하고 경험 많은 교사가 이 반을 맡도록 한 점. 수학의 경우, '상반'이 37명인 반면 '하반'에 23~25명을 배치해 좀 더 개별적인 지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영주 교사는 "2년째인 수준별 이동수업이 정착됨에 따라 학생들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며 "올해 말 성취도평가 결과가 나오면 그 성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 전문가 조언 "반편성 평가 잣대 객관화…하위권 학생 배려해야"

2002년부터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시작된 수준별 이동수업은 아직 정착되지 못한 실정이다.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방식이다', '사실상 우열반이다' 등 비판적은 의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저한 평가 잣대와 하위권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북대 교육학과 강이철 교수는 "선행학습 정도에 따라 출발선이 다른 학생들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상, 중, 하 반으로 나눴을 때 상반의 경우, 어느 정도까지 선행학습이 되어 있는지, 하반은 뭐가 부족한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진단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는 것.

현재의 성적 순으로만 반을 나누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강 교수는 "외국에서도 성적순으로 수준별 이동수업을 했을 때 큰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근본 원인이 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생 개개인의 지적 수준뿐 아니라 학습 선호도, 공부 방식, 특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 교수는 "어떤 학생은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학생은 어울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예를 들었다. 현재처럼 성적순으로만 평가한다면 학생들 사이에서도 학습 수준이 사교육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초 학력이 떨어진 학생들에 대한 배려도 필수적이다. 영남대 교육학과 김재춘 교수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 올리기에는 효과적이지만 하위권 학생들은 오히려 성적이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하위권 반의 경우, 학생 수를 줄이고 경험이 풍부한 교사들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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