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이명박 정부 위기의 본질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위기라는 소리마저 들린다. 국민의 불신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중고등학생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정권 말 레임덕 현상 같다는 진단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사태다. 대통령 자신도 곤혹스럽겠지만 국민도 참담하긴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서둘러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5년이 이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제는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대통령의 철학과 인식이 문제인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CEO대통령론과 실용주의가 문제의 핵심이다.

먼저 CEO대통령론을 보자. 이명박대통령은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를 자처해 왔다. 경제 살리기만큼은 자신있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대통령은 부지런한 기업체 CEO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 열심히 해라, 일찍 출근해라, 전기 아껴 써라 등. 시시콜콜한 일까지 지시하면서 지휘자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다. 대통령의 역할도 기업체 CEO의 역할과 같을 수 없다. 우선 국가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기업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에 있지만, 국가의 목표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과 복리를 책임지는데 있다. 국가는 사회정의와 인권,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책임져야 하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에게는 기업체 CEO처럼 이윤과 경제가 만사가 아니다. 경제가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에는 경제 외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와 목표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예컨대, 영토, 주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민족문화의 창달, 한반도 평화, 인권 신장, 민주주의 등도 경제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의 목표다. 사회통합과 지역 균형발전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기업은 목표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추구해 가는 방법과 절차도 다르다. 기업에게는 효율이 중시되지만 국가에게는 민주적 절차가 중시된다. 민주주의의 테두리 내에서 품격있는 수단을 통해 국가의 가치와 목표와 원칙을 실현해 가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은 기업체 CEO와 달리 국민의 의견을 들어가며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다양한 계층, 지역, 이해집단의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를 조정해 가면서 정책을 만들고 다듬어 가야 하는 것이다.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의 여론을 살펴야 한다. 기업체 CEO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민주적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 조정의 리더십을 대통령과 정부가 제일의 덕목으로 갖춰가야 하는 것이다. 기업체 CEO는 실용주의자일 수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 대통령에게는 실용주의가 미덕일 수 없다. 실용주의에 대한 일방적 강조는 자칫 인권과 민주적 절차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을 소홀히 해도 괜찮다는 가치상실의 혼돈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지금의 혼란과 위기는 이명박대통령이 마치 CEO처럼 대한민국을 경영하려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기업체 CEO에게나 미덕일 수 있는 대한민국주식회사론과 실용주의를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맹신하는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는 일도 대통령 자신이 기업과는 다른 국가의 가치와 목표, CEO와는 너무도 다른 대통령의 역할과 덕목을 깊이 인식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대통령이 며칠 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특별히 반성과 소통을 강조했다고 한다. 자신부터 변화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같은 시간, 정부는 여전히 촛불든 중고등학생의 배후를 찾아 나섰고, 비판적인 언론을 길들이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반성마저 진정성이 없다고 느껴지면 국민의 질타는 더욱 무서워질 것이다. 부디 남탓, 좌파탓, 방송탓 그만 하고, 진정 자신의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 스스로 변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국정은 쉽게 제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이다. 너무 일찍 찾아온 지금의 위기는, 대통령과 정부가 대응하기에 따라서는, 너무 소중한 축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진정 그렇게 되기를 염원해 마지않는다.

홍덕률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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