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술 타임캡슐

중국의 명주로 손꼽히는 샤오싱주는 저장(浙江)성의 샤오싱(紹興) 지방에서 생산되는 술이다. 재미있는 고사가 전해진다. 옛날 샤오싱의 한 남자가 아내가 임신을 하자 기쁜 마음에 아이가 태어나면 친구들에게 대접하겠다며 술을 빚었다. 한데 기대와 달리 딸이 태어났다. 실망한 남자는 술항아리를 마당 한구석에 파묻어버렸다. 훗날 딸이 자라 시집을 가게 되자 남자는 잊어버렸던 술 항아리가 생각났다. 땅을 파보니 아주 향기로운 술이 되어있었다. 이 술이 '뉘얼훙(女兒紅)'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린 까닭이다. 이후 샤오싱에서는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땅에 묻어두었다가 시집 보낼 때 개봉하는 풍습이 생겼다.

옛말에 '술과 벗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했다. 술은 해묵어야 향기롭고, 벗 또한 세월과 함께 곰삭은 정이 들어야 좋다는 거다. 오래된 술은 오랜 벗, 반가운 손님에 대한 최고의 환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이 먹는 음식물 중 술만큼 장구한 세월을 잘 견뎌내는 게 또 있을까. 기네스 기록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술은 1980년 중국 후난(湖南)성의 고분에서 출토된 기원전 1300년 전 것이다. 알코올 기운은 거의 증발됐다지만 아득한 세월 너머 3천 년도 더 된 술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중국 시안(西安)의 한 무덤에서 청동항아리에 담긴 5ℓ 분량의 2천 년 이상 된 술이 발견되기도 했다. 漢(한:BC 206~AD 24)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술은 발견 당시 옅은 녹색에 코를 자극할 정도로 향이 강했다 한다. 또 독일 슈파이아의 와인박물관에는 기원전 102년경 고대 로마의 술이 보관돼 있다 한다.

국회의사당 앞 2개의 해태상 밑에 화이트 와인 72병이 묻혀 있다고 해 작은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해태상은 1975년 국회의사당이 태평로에서 여의도로 이전할 때 火氣(화기)를 누를 목적으로 세웠다는데 당시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국회가 해태제과에 도움을 요청해 이루어졌다. 당시 업체 측은 해태상 아래 10m 깊이 땅 속에 해태주조가 국내 최초로 100% 생산한 와인 '노블 와인'을 양쪽에 각각 36병씩 묻었다고 한다. 개봉일은 2075년.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상당수는 문득 쓸쓸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67년 후…. '100년 전 술 타임캡슐 개봉'소식이 후세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해진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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