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아이들이 네 아버지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네 아버지는 하늘도 올려다보지 않고 연을 쫓아가곤 해서, 사람들은 네 아버지가 연의 그림자를 쫓아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나 빼놓고 사람들은 몰랐던 거야. 네 아버지가 그림자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이미선 옮김/열림원/564쪽/1만2천원.
훌륭한 문학 작품은 아무래도 수려한 문체나 깊은 학식만으로 완성되는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의 '위화(余華)' 같은 소설가는 그 작품을 한역한 한국의 중국문학 번역가보다도 더 적은 개수의 한자만을 알고 있단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작품성 면에서도 조심스럽게 노벨 문학상 수상이 점쳐질 만큼 그 깊이를 인정받고 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그에게 영어는 가장 '익숙한' 언어가 아니었지만, 그는 그 '영어'로 '할리우드'만큼 재미있고도 '인도 영화'처럼 따뜻한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그의 데뷔작 '연을 쫓는 아이'의 성공 속에는 '911 전쟁 특수'와 미국 지식인들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원죄의식이 어느 정도는 포함됐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한 소년의 기구한 성장과정과 반성, 화해를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의 혼종적 풍광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이 21세기 '영문학'이 낳은 가장 독창적이고 진정성 어린 작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호세이니의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그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강한 '하이브리드'적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하이브리드'는 쉽게 말해 '잡종'이다. 그러나 그 '잡종'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들의 열광적인 숭배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다니엘 헤니처럼 섹시하며, 데니스 강처럼 날쌔고, 우르슐라 메이스처럼 날씬하다. 이제 우리에게 '하이브리드'는 선택의 여지가 남겨진 미래의 과제가 아니다. 검은 피부의 '붉은 악마'와 하얀 피부의 가정주부는 이제 명백한 현실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불러올 다양한 혼종문화의 긍정적 효과를 셈하는 한편, 극단적 민족주의의 오만과 편견을 극복할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교양을 마련해야 한다. 성균관대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의 개소는 이런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것으로 칭찬받아야 하며, 그들이 내놓은 책 '하이브리드 컬처'는 우리 시대의 필독서 중 한권으로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 지구화는 지금까지의 '순수한' 울타리를 무너뜨리며, 과연 '우리',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예전의 국가, 민족, 가족의 개념은 더 이상 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다. 『하이브리드 컬처』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 편저/커뮤니케이션북스/270쪽/1만8천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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