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새정부가 출범할 때 기뻐했던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 지긋지긋(?)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고 이명박 대통령을 처음 맞으면서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건 너무 非理性(비이성)적이다 싶을 정도로 큰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마치 큰 福(복)이 하늘에서 뚝딱 떨어질 것처럼 느끼는 이들이 꽤 있었다.
김범일 시장을 비롯한 대구시 고위 공무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공무원 신분 탓에 드러내놓고 표현하기는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대구시청에서는 "이제 대구는 살았다" "뭐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구는 늘 찬밥신세였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당시에는 정부부처나 청와대를 가더라도 대구 공무원들은 언저리만 맴돌았다. 굵직한 국책사업은 다른 지역에 다 뺏기고 큰 예산이 들지않는 부스러기(?) 사업만 대구에 떨어졌다.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어디 감히 '꼴통 보수' 지역민들이 언감생심 진보정권으로부터 시혜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이 됐다. 노무현 정부 때와 달라진 것은 무엇이며 나아진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 가졌던 엄청난 기대감을 볼 때 지금쯤 뭔가 자그마한 수확이라도 있지 않을까? 근데 요모조모 따져봐도 별다른 것이 없다. 공무원들에게 '뭔가 이뤄놓은 게 있는가'라고 물어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비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이도 있을 것이다. 맞는 얘기다. 그렇지만 주변 여건을 돌아볼 때 대구의 미래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대구시의 업무 추진방식을 한번 보자. 건설 찬반 논란이 분분한 낙동강 대운하에 관해서다.
이달 초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시도지사 회의에 앞서 김태호 경남지사는 "다른 지역에서는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지 않더라도 경남지역의 낙동강만이라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반대여론 때문에 궁지에 몰려있던 청와대가 크게 반색했다. 지난달 말 경북도는 3일간 대규모 낙동강 뗏목탐사를 했는데 이 대통령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대구시는 뒤늦게 지난 16일에야 보트로 달성군 일대를 1시간여 동안 돌아보는 '뒷북'을 쳤다. 영남권 광역단체장 모두가 운하 건설을 찬성하고 있는데도 이니셔티브는 경남도에 뺏기고, 명분은 경북도에 넘겨줬다고 하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대구시 행정은 매사가 이런 식이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도 마찬가지다. 덜컥 유치만 해놓고 아무런 후속대책이 없다. 세계엑스포를 하는 여수나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던 강원도 평창조차 도시 형태가 바뀌고 활기로 넘쳐나는데 대구는 조용하기 짝이 없다. 비전도 없고 구상도 없다. 하다 못해 공무원들이 그토록 즐겨하는 '전시행정'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그것조차 못하고 있다.
다른 지역은 어떤가. 광주의 光(광)산업단지 조성과정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1990년대 후반 광주시는 광산업단지 조성을 제안했으나 정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흔들었다. 워낙 생소한 분야인데다 산업 인프라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시는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정부와 청와대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정책담당자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초라하게 시작했던 광산업단지가 올해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대구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호남정권 덕을 봤겠지'라고 하겠지만 광주지역 언론들은 기획력과 끈기의 결실이라고 자평한다. 트럭 몇 대 분량의 자료를 만들고 수많은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3년간 달라붙어 이룬 성과물이었다.
아무리 대구와 가까운 정권이 들어서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열정과 끈기가 없으면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냥 던져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무원들의 자세나 업무추진 방식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대구의 추락은 결코 정권 탓이 아니라 대구시나 대구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탓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것이 걱정스럽다.
박병선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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