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용역의 한계

베드로 대성당이 있는 로마의 바티칸궁을 지키는 교황 근위대는 스위스 傭兵(용병'코홀로 헬베티카)이다. 500년을 맡아 지켜오는 전통은 사자 같은 용기와 충성심으로 교황청을 사수한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505년 베드로 성당을 개축하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스위스와 용병 계약을 맺는다. 용병은 1527년 부르군디군의 로마 침탈 때 대장을 포함한 147명이 죽고 47명만이 살아남으면서 교황청을 사수했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등에 창이 꽂힌 채 죽어가는 유명한 '빈사의 사자상'은 용병의 상징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호위하다 스위스 용병 786명이 목숨을 바쳤고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1820년 만든 작품이다.

프랑스 외인부대(레지옹 에트랑제)에는 한국인 60여 명을 포함해 세계 130개국의 5천여 명이 용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1831년 창설된 이 부대는 알제리'스페인 내전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전투지역에 파견돼 지금까지 3만5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용병은 때에 따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고용돼 병역을 제공하는 용병이 민간 영역으로 옮겨와 用役(용역)으로 바뀌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사전적으로는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勞務(노무)를 제공하는 일'로 풀이한다. 여기에다 '업자'가 붙으면서 대체로 부정적 이미지가 더해지기도 한다.

현직 국회의원이 9년 전 상대후보를 살인 청부했다는 진정서를 접수한 검찰이 수사 중이다. 또 용역업체 직원이 대낮에 현금 2억6천만 원이 실린 현금수송차를 몰고 달아나 경찰이 쫓고 있다. 비도덕적인 용역 계약이고 계약을 위반한 용역업체 직원이다. 모두 용역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질서유지 활동을 하던 서울시 용역직원 박모(23) 씨가 김밥할머니를 발길질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오르면서 네티즌들이 들끓고 있다. 휴학생인 박 씨는 "평생 이 일이나 해먹고 살아라"는 할머니의 욕설에 '욱'해서 이성을 잃었다고 했다. 할머니의 해명을 들을 길 없지만 박 씨가 용역의 권한을 넘어선 것만은 분명하다. 용역에는 욕먹을 짓까지 포함되는 것일까. 용역의 권한과 책임 한계라는 계약에 앞서 사회 윤리부터 챙겨야겠다.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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