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사유공간(思惟空間)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하나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꼽습니다. 국보 78호와 83호로 지정되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금동 반가사유상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반가사유상이 지닌 아름다움의 특색은 사색하는 부처님으로서의 깊고 맑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원숙한 조각 솜씨와 오묘한 해화(諧和)를 이루는 데 있다.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 주는 것이 이 부처님의 미덕이다."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의 경복궁시대를 마감하며 이 반가사유상 2점을 특별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330㎡(100평) 가까운 넓고 높은 공간 한가운데에 사유상 단 2점만을 나란히 모셨습니다. 실로 새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시 한번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조용히 앉아 두 반가사유상들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사유공간'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찬찬히 관찰하며 데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새삼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문화유산은 작품마다 지녀야 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공간을 무시하고 확보해 주지 않으면 빛나지 않습니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서로 부딪치고 파묻혀 버립니다. 작품마다 지닌 이러한 공간을 알아채고 충분한 공간 속에 전시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몫입니다.

며칠 전 국립경주박물관에도 '사유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불교조각실에 다른 부처님들과 나란히 놓였던 반가사유상이 있었습니다. 경주 송화산에서 발견된 것으로 앞의 반가사유상들과는 달리 돌로 조각한 작품입니다. 이 반가사유상을 100㎡(30평)쯤 되는 넓고 환한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 높게 홀로 모셨습니다. 반가사유상만의 공간입니다. 비록 머리와 팔들은 깨져 없어졌지만 훌륭한 작품임이 새삼 드러나며 마치 새로이 탄생한 듯합니다. 덕분에 불교조각실의 다른 부처님들도 넉넉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 '사유공간'으로 초대합니다.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시길 희망합니다. 잠시 반가사유상처럼 앉아 누가 조각했을까, 어떤 표정 어떤 미소를 짓고 있었을까,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을까, 스스로 물어보고 스스로 답하며 사유에 잠겨 보셨으면 합니다.

큐레이터로서의 꿈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 교토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목조 반가사유상을 우리 반가사유상과 함께 일당(一堂)에 전시하는 것입니다. 전시명은 '사유'입니다. 두 반가사유상들이 뿜어낼 그 아름다운 광경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실로 천수백년 만의 만남입니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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