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는, 남자가 그것도 원기 팔팔한 액션 히어로의 사내들 얼굴에 하나 둘씩 주름살이 어리고 허리 곡선은 둔해져서 마침내 하늘을 날던 그들이 단기간 구보에도 헉헉 대는 것이리라.
그런데도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곁에 되돌아 오기를 희구한다. 람보가 그랬고, 터미네이터가 그랬으며, 다이하드의 맥클레인 형사가 그랬다.
저 할아버지 왜 또 저러시나 툴툴 대다가도 막상 구관이 명관인지라 속편만 만들면 전 세계 관객들은 죄다 극장앞에 모여든다.
그러니 이 사내, 툭하면 채찍을 휘두루며, 숱한 여자를 희롱하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이 마초사내, 인디아나 존스가 다시 복귀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새삼스러울소냐. 그런데도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본다는 것은 새삼스러웠다.
그 유명한 중절모 밑의 주름진 인디를 다시 보는 일은 그를 창조했던 스필버그가, 촬영 감독 야누스 카민스키가, 음악가 존 윌리엄스가, 제작자 조지 루카스가 늙어간다는 것이며 그들을 보고 자랐던 80년대의 헐리우드 키드들도 덩달아 늙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면에서 새로나온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향수와 반가움과 세월의 무심함에 대한 슬픔같은 복합적인 묘한 뉘앙스를 인디 키드들에게 불러일으킨다.
2차 대전 후 냉전이 최고조에 다다른 1957년 네바다.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는 친한 동료 맥(레이 윈스톤)과 함께 사막의 한 비밀 기지에 끌려 들어온다. 그들을 납치한 것은 전대미문의 미이라를 찾으려는 소련 특수부대 이리나 스팔코(케이트 블란쳇) 일당. 자석의 원리를 이용, 공기중에 총알을 던지며 미이라를 찾은 찰라, 인디는 악당들의 추격을 피해 힘겹게 탈출하다 원자폭탄 실험지역 한 가운데 떨어진다.
기지어린 냉장고 탈출에 성공한 덕분에 대학에서 고고학 강의를 하며 평범하게 지내는 인디. 그러던 어느 날 인디의 교수직을 해고하려는 정부의 또 다른 압력과 함께 그의 앞에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 열쇠를 쥔 청년 머트 윌리암스(샤이아 라보프)가 나타난다.
이제 인디는 방사능에 피폭되고 (물론 철통같은 냉장고에 숨은 덕분에 방사능은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지만) 까맣게 몰랐던 아들이 생겨나고,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몰린다.
아버지 인디아나 존스, 결혼을 하는 인디아나 존스, 아들을 염려하는 인디아나 존스.
왕년의 숀 코넬리 (인디아나 존스의 아버지 역을 했던)가 그렇하듯 이제 그도 슬슬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인디의 은퇴 수순을 대비, 벌써부터 착실하게 후계자 수순을 밟아 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머리에 피도 안마른 헨리 존스 3세는 채찍 대신 50년대 불량아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 재킷을 입고 잭 나이프를 휘두르며 틈만 나면 머리를 빗어 넘긴다. 이 아들은 인디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를 대신해 차 위에서 칼을 휘두르고, 다시한번 인디아나 존스의 콤비 플레이에 일조를 하는 든든한 원군이다.
그리곤 스필버그는 이야기의 축을 이제까지 한번도 다루지 않았던 시원의 세계, 마야, 잉카 문명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물론 여기부터는 스필버그가 재창조한 네버 랜드의 세상이 천지창조된다.
'인디아나 존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달려드는 불개미떼에 쫓기며 낯선 원주민들의 독침 세례를 받고 교통 위반 딱지 뗄 염려가 전혀 없는 정글에서 벌이는 종횡무진 롤러 코스터 추격전. 특히 이구아수의 폭포에 삼단 후룸 라이드를 벌이는 진기명기야 말로 이번 인디 시리즈의 스펙터클 진수라 할만하다.
아들은 아버지를 전문 도굴범 혹은 시시한 선생이라고 부르지만 그런 아들에게 단단히 아버지의 용맹을 한 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도 이 모험 덕분이고, 여기에 인디아나 존스 특유의 유머가 곁들여지면 화룡정점의 마지막이 완성된다.
그래서 러시아 스파이에게 쫓겼을 때 인디는 난 공산당이 싫어요 (사실은 원어로 인디는 ' I like Ike'='난 아이젠하워가 좋아'라고 함,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50년대 미국의 대표적 캐치 프레이즈)를 외치고, 연인과의 달콤한 키스는 훼방당하고, 당신 정말 선생이에요 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청년에게 '시간 강사야' 라고 능청을 떠는 일만 남았다.
관객들은 환호하고 놀이공원처럼 변해 버린 극장 좌석에서 팝콘과 함께 영화를 소비하면 올 여름은 어느 덧 성큼 이글거리는 태양의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가고 있을 테지.
그러니 '인디아나 존스'에서는 딱 블록버스터 그것도 B급 모험물이 줄 수 있는 재미만을 기대하시길.
이 영웅은 반지를 버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성배를 찾으러 가며, 고결한 정신과 심오한 주제에 공명하는 신화의 세계 보다는 낯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언제나 여자들에게 먹히는 영웅담을 낚으러 한 세상을 떠도는 것이니.
인디아나 존스의 끝은 여전히 깨끗하게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폐허의 세상이다. 늘 깨끗이 감정을 정리하며 대를 이어 영원 불멸의 놀이 제국을 이어 가려는 헐리우드의 욕망만이 남는 것이 인디의 공식이다.
이 정도면 관객들은 오감 만족. 대리 만족. 아직도 관객들을 대책없는 아이로 만드는, 인디아나 존스의 세계는 건재하다. 손쉬운 놀이공원의 대안책으로 콜라와 함께 들이 마시는 인디아나 존스가 돌아왔다.
존 윌리엄스의 그 유명한 인디 테마 아래, 크리스탈 해골 왕국의 모험이 이제 막,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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