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중국에서 강진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재난으로 전 세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고,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던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지진 구호 기금에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한다. 자연재해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세계의 한없이 약한 모습도 목격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이념과 국가의 이해를 떠나 인도적인 차원에서 황폐해진 심신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로 구호에 앞장서서 하나의 지구로 결속력을 다지고 있는 모습에 명치끝이 아려온다. 이런 와중에 이번 지진에 대한 우리나라 일부 네티즌들의 악성댓글이 중국에 소개되었다는 기사가 눈에 띄어 인터넷문화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예전 초등학교 시절, 학교 담벼락이나 화장실 나무문짝에 은밀하게 적어보던 낙서가 있었다. '얼레리 꼴레리'에서 시작하여 '누구는 아무개를 좋아한다'거나 때로는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미운 이를 향해 속마음을 털어놓는 고백의 장이었다. 마음 없는 벽을 향해 일방적으로 내뱉던 소리 없는 외침들, 시인은 소리없는 아우성을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으로 공중에 매달았지만 어린 시절의 동심은 이렇게 벽을 향해 속내를 내비치는 일방통행을 감행하곤 했다. 휴대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구닥다리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돌이켜보면 상호작용을 기대하지 않았어도 장벽이라고 느끼지도, 단절이라고 생각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소통의 도구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오히려 수시로 장벽에 부딪히고 단절을 경험한다. 소통의 시대에 '소통부재'를 걱정해야하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상의 공간에서 이어지는 소통의 편린들이 수없이 쏟아지지만 주관적인 판단으로 익명이라는 커튼 뒤에 숨어 저지르는 횡포들이 적지 않고,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댓글들이 난무하면서 집단주의에 의한 또 다른 단절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옛날의 담벼락 낙서가 일종의 고해성사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가상공간에서의 악의적인 댓글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타인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고 공격으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정보의 시대, 소통의 시대를 무색하게 하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다. 이 짙은 어둠 속에서 상처받은 어떤 생명들은 꺼지기도 했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가슴에 깊이 박인 옹이로 신음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소통수단의 양적팽창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일방통행으로 단절에 무게중심이 더 쏠린 것은 아닌지 한번쯤 점검해 볼 일이다.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이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다양한 수단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누구든 의사표현과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쌍방향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이 즈음에, 합리와 절제, 그리고 냉철한 판단으로 인터넷문화를 선도하는 '집단지성'을 기대해 본다.
김향숙(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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