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남성과 15년 전 결혼한 40대 가정주부 A씨. 15년간 계속된 남편의 폭력에 22일 결국 대구의 한 가정폭력상담소를 찾았다. A씨는 "신혼 초 말다툼을 벌이다 따귀를 맞았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참았는데 결혼 생활이 지속되면서 때리는 횟수가 늘고 정도도 심해졌다"며 "이튿날이면 남편이 선물을 사오는 등 용서를 빌어 폭력이 더 오래 지속된 것 같다"고 눈물을 흘렸다.
가정폭력이 가정의 달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가해자의 대부분인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권위를 앞세워 유·무형의 가정폭력을 반복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이번만 그러고 말겠지'라는 생각으로 신고를 미루다 피해를 키우고 있다.
(사)대구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 한해 접수된 가정폭력 피해 상담은 1천283건으로, 이 가운데 신체적 폭력, 폭언 등 직접적인 가정폭력 상담이 50.8%(652건)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이혼 등 법률문제(101건), 부부갈등(95건), 시집갈등(74건), 외도(66건) 등 일반 상담이 주를 이뤘다.
가정폭력 상담 유형 가운데는 신체적 폭력이 62.5%(406건)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의처증과 폭언 등 정서적 학대(143건), 생활비를 주지 않는 등 경제적 학대(68건), 성적 학대(27건)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가정폭력=범죄'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갖고 아내를 아랫사람으로 인식, 길들이려는 과정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난다는 것. 김영자 대구여성폭력통합상담소장은 "아랫사람을 제압하기 위해 폭력이 가장 효율적이라 믿는 남성들이 가정폭력의 주된 가해자"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대처가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조윤숙 대구여성의전화 대표는 "'나만 참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야, 조용히 덮고 넘기자'는 생각을 가진 매맞는 주부들은 신고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형태의 악순환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정폭력이 대물림되는 사례가 다수 접수되고 있어 '나만 참으면 끝나는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윤정 대구가톨릭가정폭력상담소장은 "맞은 사람은 자신이 잘못해서 맞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결국은 무기력증으로 이어진다"며 "가정폭력의 경우 하루라도 빠리 가해자와 함께 상담을 통해 고쳐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의 길"이라고 조언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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