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사회에서는 통치자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남편이 죽었을 때 신하나 처첩, 노비들이 뒤를 따라 죽는 장례 습속이 있었다. 殉葬(순장) 또는 殉死(순사) 풍습이다. 특히 고대 문명발상지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분포했던 장법이었다. 순장은 그 사회가 뚜렷한 신분사회, 가부장적 사회였음을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한다.
순장은 지배자가 죽으면 저 세상에서도 생전의 신분과 그에 예속된 사람들이 똑같은 상하 관계로 살아간다고 믿는 내세관에서 비롯됐다. 산 채로 또는 강제로 죽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 묻기도 했다.
중국은 殷(은)나라 때 이미 순장제가 나타나 西周(서주)시대까지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자가 죽으면 그 아내와 첩, 하녀 등 망자 소유의 여자들은 한 무덤 속에 묻혀야 했다. 그 과정이 너무 처참해서 훗날엔 대신 나무인형을 망자와 함께 묻는 것으로 바뀌기도 했다.
여하튼 이 풍습은 시대 흐름에 따라 격감하다가 明'淸(명'청)대에 또다시 성행했다. 죽은 남편을 따라 지체 없이 목숨을 끊는 아내는 烈女(열녀)로서 크게 칭송받았으며, 열녀들이 있는 곳엔 牌坊(패방) 즉 열녀문을 세워 모범으로 삼았다. 1725년에 편찬된 '古今圖書集成(고금도서집성)'에는 18세기 초반까지 여성 수절자가 명'청대에 가장 많고, 남편 사후 자살 및 타살된 여성의 수도 이 시대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사회의 폐쇄성 등을 고려할 때 정확성 여부는 미지수지만 자의든 타의든 남편을 따라 죽은 여성이 그만큼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순장은 중국보다는 늦지만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랜 풍습으로 내려오다 신라 지증왕 때 폐지됐다. 임당고분군, 고령 지산동 44'45호분 등에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최근 大伽倻(대가야) 본거지인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에서 1천여 점의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돼 화제다. 73'74'75호분과 주변 소형 고분에서 나왔는데 5세기 대가야인들의 생활 면모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들이라 한다. 특히 75호분 석실에서 최소 7명의 殉葬槨(순장곽)을 확인하게 된 것이 큰 성과다. 그간 한'일 고고학계는 지산동 44'45호분의 순장곽 등을 두고도 순장 논쟁을 벌여왔지만 이로써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이낙연 "조기 대선 시, 민주당은 이재명 아닌 다른 인물 후보로 내야"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
野, '줄탄핵'으로 이득보나…장동혁 "친야성향 변호사 일감 의심, 혈세 4.6억 사용"
尹공약 '금호강 르네상스' 국비 확보 빨간불…2029년 완공 차질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