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의 생존한계, 神도 모른다

극한을 이겨내는 인체의 신비

진도 8.0의 강진이 휩쓸고 지나간 중국 쓰촨성.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곳에서도 기적의 꽃이 핀다. 지진이 지나간 지 9일 만인 지난 21일 추이창(37·여)씨가 구조됐다. 지진이 일어난 지 무려 216시간 만이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허리와 팔이 부러진 추이씨는 동료들을 산 아래로 보낸 뒤 9일간이나 혼자 버텼다. 앞서 20일에는 왕요우치웅(60)씨가 매몰 196시간 만에 구조됐다. 왕씨는 지난달 30일 롱먼산의 푸인(福音)사로 불공을 드리러 왔다 매몰됐다. 앞서 19일에도 탄광 지역에 매몰됐던 여성 2명이 164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고 같은 날 출산을 앞둔 임신부가 건물 폐허에서 발견돼 의료지점으로 이동하던 중 출산을 하기도 했다. 끔찍한 재난의 현장에서 생환자의 기적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그들은 어떻게 저승 문턱을 넘지 않고 이승으로 돌아왔을까.

◆극한을 넘다

2005년 지진해일의 대재앙이 휩쓸고 간 동남아시아에서도 기적의 생환 드라마가 펼쳐졌다. 인도네시아의 아체 주에서는 무너진 집에 깔려있던 무하마디 자이니(70)씨가 13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고 스리랑카 남부 해안에서도 6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13일 만에 삶을 되찾았다.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의 '올드 크리스천스' 럭비팀과 일행 45명을 태운 전세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 한가운데로 추락했다. 생존자들은 영하 40℃에 이르는 추위와 희박한 공기, 굶주림과 싸웠다. 살아남기 위해 죽은 동료의 살을 먹으면서 버텨야 했다. 사고 발생 62일째. 생존자들은 등산장비 하나 없이 해발 5,000m의 안데스를 넘기로 했다. 결국 10일간 100㎞를 걷는 사투 끝에 구조요청에 성공했고 16명이 살아남았다. 이 '기적의 생환 스토리'는 두차례에 걸쳐 영화화됐다.

총 502명이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년). 당시에도 각본 없는 생존드라마가 펼쳐졌다. 최명석(당시 15세), 유지환(당시 17세·여), 박승현(당시 19세·여)씨가 죽음을 딛고 일어선 감동의 주인공. 최씨는 10일, 유씨는 13일, 박씨는 17일 만에 구조됐다. 특히 박씨는 한방울의 물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17일을 견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있던 시간만 무려 377시간에 이른다. 박양의 매몰시간은 1967년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 지하 125m의 갱 속에 갇혔다가 369시간 만에 구조된 광부 양창선(당시 36세)씨보다 8시간이 길다.

지금까지 붕괴나 지진 등으로 매몰된 상황에서 인간의 생존능력은 20일 정도가 한계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물과 음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기록은 1979년 오스트리아의 안트레아 마하베츠(당시 18세)군이 버텼던 18일이다.

역사상 남극에서 가장 오랜 생존 드라마를 연출한 주인공들은 영국의 어니스트 섀클턴 탐험대다. 남극대륙 횡단을 목표로 1914년 8월 영국을 출발한 섀클턴과 대원 27명은 목적지를 150㎞ 앞두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후 10개월을 정처없이 표류했고, 배가 부서지자 얼음 위에 텐트를 치고 사투를 벌였다. 펭귄과 물개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대장 섀클턴은 대원들을 남겨둔 채 대원 5명과 함께 1천300㎞나 떨어진 사우스 조지아섬의 기지까지 이동했고, 난파 634일 만에 대원 전원을 구출했다.

◆인간의 생존 한계는 어디까지

인간은 극한상황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정확한 연구 결과는 없다.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인위적인 실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진으로 인해 매몰됐을 경우 120시간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은 5.8%에 불과하다. 24시간 이내에 구조되면 80.5%가 살아남지만 72시간(21.8%)을 고비로 생존율은 뚝 떨어진다. 72시간을 넘으면 체내 수분이 빠져나가 탈수를 일으키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존율은 수분과 외상 정도, 스트레스, 건강 상태, 기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오래 생존하려면 외상이 없고, 물을 공급받을 수 있으며 주변 기온이 너무 덥거나 춥지 않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는 일주일 남짓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1989년 캘리포니아 지진,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수많은 재난 현장에서 의료구조단을 이끌었던 캘리포니아대 어빙 제이코비 박사는 "피해자의 생존은 전적으로 그들의 상태에 달려 있다. 부상이 심하지 않으면 1주 또는 10일, 아주 여건이 좋을 경우는 2주 이상도 생존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극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인체는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한다. 뇌는 생체시계를 늦춰 몸의 대사를 저하시킴으로써 활동에 필요한 연료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인체는 음식물 공급이 없을 경우 몸에 축적된 지방과 간, 근육에 저장한 글리코겐으로 1~3개월까지 버틸 수 있다. 문제는 수분이다. 인체는 지방을 분해해 하루 0.25ℓ의 물을 만들어 자가공급한다. 그러나 호흡과 땀으로 0.4ℓ가 인체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외부에서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탈수상태에 이르게 된다. 특히 몸이 무거운 물체에 눌릴 경우 크래시 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 크래시 증후군은 파괴된 근육조직에서 나온 미오글로빈이 요세관을 막아 급성신부전이 오는 현상을 말한다. 박현수 대구응급의료정보센터 담당의는 "수분이 부족하면 콩팥기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몸이 붓고 노폐물이 제거되지 않으며 끝내 의식을 잃게 된다"며 "소변을 마시면서 버티는 경우도 있지만 수분 공급이 없으면 그 양마저 계속 줄기 때문에 오래 버티긴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물에 빠졌을 경우 생존 확률은 급격히 낮아진다. 저체온증 때문이다. 체온이 34℃ 아래로 떨어지면 내부 장기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공군의 비상시 행동요령 매뉴얼에 따르면 해수온도가 -1℃ 미만일 경우 생존 시간은 15분 미만에 불과하다. 4℃에서는 90분, 10℃ 미만에서는 3시간, 16℃ 미만에서는 길어야 6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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