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리연구가 '빅마마' 이혜정씨

'대구 음식' 나쁘지 않은데 먹는 사람들 칭찬 너무 인색

▲ 이혜정씨의 \
▲ 이혜정씨의 \'쿠킹 스튜디오\'

요리연구가 '빅마마' 이혜정(52)씨는 대구에서 꽤 알려진 유명인사다. 손맛 좋다는 입소문이 퍼져 방송에 출연했고, 푸근한 인상과 맛깔나는 말솜씨로 '주부스타'로 떠올랐다. 그녀를 21일 늦은 오후 경기도 과천시 이혜정의 'Cooking Studio'에서 만났다. 그녀는 예전보다 6, 7㎏ 빠졌다는데 "날씬해졌다"는 인사치레에도 꽤 즐거워했다. 그녀는 "요리를 통해 가족들이 날 인정해주고 삶의 보람을 찾은 게 가장 큰 의미"라며 "만약 요리를 안 했으면 우울증에 걸렸거나 이혼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요리와 조리는 마음의 차이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AI),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등 요즘처럼 먹을거리 고민이 큰 시기가 없는 것 같아요. 해먹을 게 없다고도 하고.

"요즘 세태를 보면 주부들은 뉴스에서 광우병, AI 이런 얘기가 나오면 아예 쇠고기나 닭고기 근처에도 안 가거든요. 너무 언론에서 말하는 데에 달아오르지 말자는 거예요. 아무리 먹을거리 논란이 많지만 발병하지 않은 다음에는 믿어보자는 얘기죠. 미국소라고 해서 다 광우병에 걸린 것은 아니잖아요. 만약 식구 중에서 수험생이 있다면 수험생은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고기를 먹여야 해요. 그런데 한우가 너무 비싸잖아요. 대신 뼈나 내장은 불안하니까 먹지 말고요. 그래서 저는 주부들이 식품에 대해 공부를 하면 좋겠어요."

-만약에 1만원권 한장을 주면서 한끼 상을 차리라면 뭘 하시겠어요?

"요즘 같으면 무국 먼저 끓이죠. 무 사다가 조개 조금 넣고 끓일 거고요. 병어나 가자미 같은 생선을 사서 조림할 거고요. 남은 돈으로는 토마토 두알 정도 살 것 같은데요. 가족들에게 영양을 보충해주고 싶지만 돈이 그만큼 넉넉하지가 않아요. 그러면 가진 예산 안에서 가장 좋은 영양을 줄 수 있는 게 뭘까 하고 고민하는 게 중요해요."

-요리와 조리, 요리사와 조리사의 차이가 뭔가요?

"요리는 가슴을 가진, 철학을 가진 사람이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거예요. 조리는 주어진 대로 일을 하는 공정이지요. 요리는 똑같은 생선 한마리가 있어도 내가 만들어줄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을 하고 가슴을 나누는 거죠. 그래서 정말 미운 사람을 위해서는 요리하지 않게 돼요. 조리가 되죠."(조리를 요리로 만드는 가장 맛난 조미료는 '마음'이라는 말씀인 것 같다.)

◆여우를 피하려다 범을 만나다

-어머니하고 성격 차이로 갈등을 많이 하셨다면서요?

"제 엄마의 고향이 대구예요. 외조부모님도 대구 출신이시고. 두분 다 굉장히 엘리트셨죠. 그런 가문에서 자라셔서 엄마는 굉장히 자존심이 있는 분이에요. 사실 6·25전쟁 당시에 조흥은행장 하셨던 외할아버지가 북에 납치되셔서 굉장히 고생을 하셨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사셨는데요. 규율이나 원칙이 굉장히 강하셨어요. 바르고 단정하게. 그런데 제 천성이 아버지를 닮아서 호기심도 많고 관심도 많고, 엉뚱한 짓도 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엄마 밑에서 힘들었어요. 엄마한테도 제가 버거운 딸이었고요."

-어머니를 피해서 결혼을 하셨다면서요.

"정말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시집을 갔어요. 스물네살 때 결혼을 했는데 엄마를 피하는 방법이 시집가는 길밖에 없으니까. 엄마는 학교 가서 해야 될 일, 집에 와서 해야 될 일을 딱 정해놓고 그 안에서 살기를 늘 요구하셨으니까. 그런데 여우를 피하려다 범을 만난 게, 남편이 어머니와 똑같아요. 엄마한테 훈련이 돼 있어서 그렇지 안 그러면 못살았을 거예요. 지금은 저한테 가장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분들이 바로 이분들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키운 건 8할이 대구

-언제 대구에 정착하신 건가요?

"1987년부터 대구에서 살았는데 1년 동안 남편이 미국 예일대 교환교수로 가는 데 따라갔다가 1993년 대구로 돌아왔어요. 제 결혼생활의 반 이상을 대구에서 산 셈이네요. 대구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요리 선생을 하겠다는 용기도 낸 거고요. 부모님이 다 경상도가 고향이시니까 어디 사람이냐고 누가 물으면 '대구 사람' 이렇게 얘기를 해요. 경상도 기질도 그대로이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대구에 대한 고마움이 80%, 남편을 생각하면 대구에 대한 섭섭함이 80% 정도."

-대구가 요리 토양이 부족하잖아요. 딱히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도 없고.

"저는 대구 음식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 따로국밥이나 추어탕 같은 건 굉장히 특색 있고 영양학적으로도 밸런스가 잘 맞는 음식이에요. 그런데 단지 대구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만큼 열린 마음을 갖지 않아요. 음식을 먹고도 '아유, 우리 음식이 좋아, 맛있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거죠. 대구사람은 뭘 만들어서 나눠먹어도 '괜찮다' 그러면 다예요.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됐는데 나중에 보니 그 안에 '정말 맛있었어. 고마웠어'가 표현돼 있다는 걸 알았어요."

-뒤늦은 나이에 어떻게 요리 전문가가 될 생각을 하셨어요?

"결혼하고 10년쯤 되니까 권태기가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뭘까, 어떤 걸 하면 제일 즐거울까 생각하니 다 요리더라고요. 그러다 어느날 새벽에 제가 벌떡 깨서 남편을 불렀죠. 나 요리 선생 할 거야. 그러니까 장보게 30만원만 줘봐. 그러니 남편이 돈 없다고, 그냥 가만히 집에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그날 아침에 장을 봐서 한팀 7명을 가르쳤어요. 한명에 5만원씩 받고 한달에 네번을 가르쳤는데 그렇게 받은 35만원에 재료비를 제해도 15만원이 남아요. 저한테 굉장히 큰돈이었죠. 그렇게 시작한 게 한달 지나니까 여섯팀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늘었죠. 저는 결혼하고 음식을 하면서부터 레시피를 하나씩 만들었어요. 별게 아니고 단무지 무침에 마늘종을 넣으니 맛있더라. 그러면 레시피가 되는 거예요. 다 메모를 하고. 그렇게 만든 레시피가 방송을 시작할 때는 3천개쯤 됐어요."

-요리를 통해 권태기를 극복하신 셈이네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가주지 않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죠. 남편도 멀어지고 아이들도 품을 떠나면 우울할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제일 잘할 수 있고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서 가장 행복했던가를 뒤돌아봤어요. 그리고 내 인생의 보험을 들어야 되겠다. 엄마가 저한테 늘 그렇게 얘기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너 자신이야. 너를 잃게 되면 그 다음부터 세상은 너를 아무도 인정 안 해준다. 너를 지켜가는 게 자존이야. 그럴려면 네가 누구보다 겸손해야 되고, 배움이 있어야 해.' 중년 주부들이 가족들이 곁을 떠나면 서운해 하잖아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거죠. 내가 얼마나 귀하고 당당한 존재인지 스스로 다듬어 가야 된다는 거죠."

◆요리에 마음을 넣으세요

-어떤 인터뷰에서 '음식을 계량하지 마라'고 하신 걸 봤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 요리를 시작하는 사람은 기본을 익히는 게 필요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된장이 좀 짜면 어때요. 싱거우면 어때요. 지금 내가 어떤 맛이 먹고 싶은지 생각하시고 만드시는 거예요. 너무 정해진 대로 가면 틀리지 않았을 거라는 자신은 있겠지만 '더 먹으라'는 한국 사람의 정서를 채워줄 수가 없어요. 우리 남편은, 우리 아이는 뭘 더 좋아하는지 생각하자는 거죠. 그러면 된장찌개 하나에도 여러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잖아요. 그 세세함을 나누자는 거죠."

-요리가 일종의 소통의 수단이 되는 거네요.

"그럼요. 시어머니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요리를 잘 못하세요. 늘 일하는 아줌마에 따라서 음식 맛이 달라져요. 김치 맛은 다르지만 어머님은 항상 다 큰 아들 밥상에서 김치도 찢어주시고, 생선도 발라주신 거예요. 아들은 그 김치의 맛을 먹는 게 아니고, 엄마가 주는 그 사랑을 먹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한 건 다 맛있는 거죠."

-국내에서 처음으로 요리 스튜디오를 지으셨는데요.

"이 집이 사실 부모님이 23년 동안 사신 터예요. 제가 요리방송을 하면서 환경적인 부족함이 늘 속상했고 딸아이가 요리를 공부하니까 스튜디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늘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이 공간을 저한테 내주신 거죠. 14억원 정도 들었는데 앞으로 여기를 요리 진화의 장으로 만들 거예요. 딸아이와 함께 철학이 있는 요리를 하는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어요. 어떤 형식이나 틀, 정돈된 맛이 아닌, 그 순간에 충실한 요리를 만들고 싶고요. 누구나 쉽고 편하게 만드는 음식을 내놓고 싶어요. 그게 '빅마마의 류(流)'가 되겠죠."

인터뷰가 끝나고, 그녀가 저녁식탁으로 손을 잡아끌었다. 요리연구가의 밥상을 받아보는 흔치 않은 기회. 화려하진 않았지만 손 가는 찬이 많은 밥상이다. 그녀는 연방 "저희는 그냥 이렇게 먹어요"라며 차린 게 없어 미안하다 했다. 함께 식사하던 그녀의 딸 고준영(25)씨가 말했다. "엄마는 기분이 상하면 음식이 짜져요. 기분이 좋으면 달달해지고요. 요새는 대체로 달달한 것 같아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이혜정= '빅마마'로 통하는 요리연구가 이혜정(52)씨는 가정식 퓨전요리로 유명하다. 이종대 유한킴벌리 초대회장의 딸이고, 남편은 고민환 영남대 산부인과 교수다. 의과대에 다니던 중 24세 때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전업주부였던 그녀는 손맛이 알려지면서 동네에서 요리 강사를 하던 중, 1993년 대구MBC 요리 강사로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고, 2004년 푸드채널(현 올리브)에서 '빅마마의 오픈 키친'으로 스타 요리 선생이 됐다. 미국 C.I.A sauce course, 이탈리아 I.C.I.F, 중국 상하이 국제 요리학교를 수료했다. 일본 후지노 마키코, 구리하라 하루미 선생과 궁중음식의 대가 황혜성, 한복려 선생을 사사했다. 현재 KBS '행복한 오후'와 EBS '최고의 요리비결' 등에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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