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팔공산의 한 농원에 갔다. 나무들 사이에 풀어놓고 기르는 토종닭들이 인상적이었다. 잘 생긴 닭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좋은 주인장 할머니는 "오늘 달걀을 낳았나 보자"며 둥지를 휘저으시더니 선뜻 달걀 한개를 내미신다. 한사코 손사래를 쳤지만 막무가내셨다. 받아든 달걀에서 따뜻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가 어린 시절엔 달걀이 최고의 반찬이었다. 노오란 빛깔의 달걀 반찬은, 무엇을 해놔도 먹음직스럽기 마련. 달걀찜, 달걀말이, 달걀 프라이 등 달걀은 빈약한 밥상에 버라이어티한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달걀이 밥상에 올라오는 일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주로 아버지와 할머니 밥상에 올라갔던 이 달걀 반찬은 할머니의 '입맛 없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까지 남겨지기 일쑤였다. 웬떡이냐 싶었지만 그것이 할머니의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세월이 훨씬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됐다.
그 시절엔 달걀이 귀해서였기도 했지만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지금의 달걀과는 맛이 달랐던 것 같다. 고소하고 감칠맛났던 달걀의 그 맛을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가 없어 아쉽다.
내가 추억어린 달걀을 이처럼 좋아하는 것과 달리 우리 손자는 달걀반찬은 'NO'다. 게다가 요즘처럼 '조류독감' 파동이 있을 때면 달걀은 더욱 찬밥신세. 어제도 달걀 반찬을 밥상에 올렸다가 식구들에게 호들갑스런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옛날 귀하디 귀하던 달걀이 이처럼 외면당하다니, 내 추억이 퇴색되는 것 같아 덩달아 마음이 아프다.
박순자(대구 수성구 범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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