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고 있는 이른바 '현실 세계'가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과연 현실은 현실인가?' 어쩌면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탄생과 성장, 죽음 그리고 종교와 철학, 사랑까지도 모두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 우리는 다시 꿈을 꾼다. 과연 꿈 속의 꿈이 현실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삶이 '진짜'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매일 잠을 자며 꾸는 꿈은 '가짜'라고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아는 이른바 '자각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꿈과 현실을 오가는 꿈, 자각몽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에서 멋진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멀리서 괴물들이 쫓아온다. 연인의 손을 잡고 달아나는데 갑자기 벼랑이 나타난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연인은 푸른 창공을 향해 함께 날아오른다. 괴물들은 허탈한 듯이 바라만 볼 뿐이다.'
이런 꿈을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달아나려 해도 발은 땅에 달라붙고, 날아오르기는커녕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만 한다. 하지만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꿈을 통제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각몽(Lucid Dream)이다. 자각몽은 다른 꿈과 달리 일관성과 현실성도 있다. 깨어있을 때처럼 기억도 하고 통제도 할 수 있다. 자각몽에 대한 책도 나와있다. 스탠퍼드대와 '루시드 드림 연구소'에서 20년간 자각몽을 연구해 온 스티븐 라버지는 지난 2003년 '꿈, 내가 원하는 대로 꾸기'와 2008년 '루시드 드림'을 펴냈다. 그는 꿈 속에서 깨어있기만 하면 사물이나 상황, 자신까지도 창조 또는 변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각몽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한두번쯤 경험해보는 현상이다. '이건 꿈이야'라고 아는 순간 깨버리기 때문에 지극히 짧은 시간 자각이 진행될 뿐이지만, 꿈과 자각이 혼재하는 상황은 누구나 겪는다. 자각몽이 정신적으로 잘못된 현상은 아니다. 꿈은 '렘(REM)' 수면 상태에서 이뤄지는데, 얕은 잠과 깨어있는 상태가 혼재해 있을 경우 많은 꿈을 꾸고 또한 자각몽이 나타날 수 있다. 낮잠을 자며 생생한 꿈을 꾸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각몽을 즐기는 사람들
의도적으로 자각몽을 꾸려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자각몽을 꿀 수 있는 비결을 교류하는 카페까지 등장해 회원이 수천명을 헤아리고, 일본에서는 자각몽을 도와주는 기구까지 등장했다. 인터넷 카페에는 상당한 자각몽 '내공'을 지닌 자칭 고수들이 친절하게 비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들이 알려주는 자각몽 꾸기 비결은 다음과 같다. 우선 '꿈 일기'를 써야 한다. 일반인들도 꿈을 깨기 직전에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꿈은 꼭 기억해야지!'하고 생각했다가 정작 깨고나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꿈의 내용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적고, 가능하다면 그림을 통해서 꿈 일기를 꼬박꼬박 적을 것을 권장한다.
자각몽을 꾸는 방법은 다양하다. 꾸고 싶은 내용을 반복해서 인식함으로써 꿈 속에서 재현해내는 방법도 있고, 5~6시간 잠을 잔 뒤에 다시 선잠에 빠져들면서 몽롱한 상태에서 자각몽을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자각몽에 실패하면 자신에게 '체벌'을 주라고 권하는 이들도 있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다거나 건전지를 혀에 갖다댐으로써 충격을 준다는 것. 반대로 자각몽에 성공하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등의 보상을 줘서 이후에 쉽게 자각몽을 꾸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자각몽 인터넷 카페의 한 회원은 "비록 꿈 속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위험한 행동 등은 삼가야 한다"고 했다. 현실과 구분이 안 되는 상태에서 자칫 꿈으로 착각해서 실제 현실에서 그러한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자각몽에 빠지다 보면 꿈과 현실의 구분이 애매하다 보니 이들은 '현실 체크(Reality Check)'를 하기도 한다.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숨을 쉰다거나 손가락을 뒤로 꺾어서 손등에 닿게 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이런 행동들이 가능하다면 꿈이고, 불가능하다면 현실이라는 것. 자각몽을 통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평소 보고싶던 사람을 꿈속에 등장시키거나 공중에 떠서 날아다니고 장소를 갑자기 바꾸는 순간이동 등이 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자각몽 놀이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자각몽 카페에는 이런 글도 있다. '자각몽에는 부작용도 있다. 깨어난 뒤 기쁘고 상쾌한 것이 아니라 피로, 두통, 피로감 등을 느낄 수 있다. 본인의 수준을 파악하고 적당히 꿈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람은 일생을 살며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고 꿈을 꾼다. 거의 매일 꿈을 꾸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 또는 허무맹랑하고 비논리적이라는 이유로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그러나 189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내놓은 이후 인류는 잠재의식의 존재를 알게 됐고, 꿈이 그저 꿈이 아님을 알게 됐다. 수면의학 권위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윌리엄 디멘트는 "(우리는 꿈을 진짜처럼 경험한다) 왜냐하면 꿈은 진짜이기 때문이다. 뇌는 외부 세계와 연결된 감각기관의 도움 없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모든 감각 정보를 꿈 속에서 되살려낸다"고 말했다.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꿈을 꾼다는 뜻.
현실이라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하버드대 신경의학자이자 꿈 연구가인 로버트 스틱골드는 "깨어 있을 때 우리가 발 담그는 현실 세계는 지극히 복잡한 신경회로가 수행하는 아름다운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신 앞에 놓인 컴퓨터의 존재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뒤 뇌를 통해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 감각정보가 없다면 뇌는 인지할 수 없다. 알고 보면 '진짜' 세상에 놓인 '진짜' 물건도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인식일 뿐이다. 말하자면 현실은 감각정보에 의존하는 뇌의 활동이고, 꿈은 감각정보의 제약이 없는 훨씬 폭 넓은 뇌의 활동이다. 이처럼 '현실이 아름다운 속임수'일 수 있다는 점을 일찍이 간파한 이가 바로 장자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녔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누워 있는 것은 바로 나, 장자였다. 내가 꿈에서 본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서 본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을 통해 자신이 꿈꾸고 있음을 알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각몽=자각 상태에서 꾸는 꿈을 말한다. 1913년 네덜란드 내과의사 F.V.에덴이 처음 사용한 용어다. 영어로는 Lucid Dream(명료한 꿈)이라고 한다.
■렘(REM) 수면=잠을 자고 있는 듯이 보이나 뇌파는 깨어 있을 때의 알파파를 보이는 수면 상태. 보통 안구가 신속하게 움직이고 꿈을 꾸는 경우가 많다. Rapid eye Movement의 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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