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민 마음 제대로 읽는 정치가 그립다…소설가 김홍신

▲ 인터뷰 도중에 김홍신은 서랍에서 수십자루의 만년필을 꺼내보였다. 그는 육필 원고를 고집한다. 컴퓨터 자판을 못 외웠다고 했다. \
▲ 인터뷰 도중에 김홍신은 서랍에서 수십자루의 만년필을 꺼내보였다. 그는 육필 원고를 고집한다. 컴퓨터 자판을 못 외웠다고 했다. \'대발해\'를 쓰면서 만년필이 3개가 닳았다고 한다.

소설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김홍신(61)은 두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한다. '인간시장'과 '공업용 미싱'. 하지만 이들 단어는 김홍신의 일부를 말할 뿐이다. 그는 지난해 10권짜리 대하역사소설 '대발해'의 집필을 마쳤다. 그를 만나러 서울 서초동 자택을 찾았다. 20여년간 이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자식들을 키우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는 그 집을 그는 너무나 아꼈다. 2층 서재에서 나눈 대화의 첫 주제는 그가 몰두해 있는 동북공정과 우리의 역사 문제였다.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찾고 싶다.

-'대발해'와 관련한 인터뷰 기사에 법륜 스님이 많이 나온다. 어떤 인연인가?

"한창 국회의원 활동할 때 소개받았다. 민족사에 관한 관점이 대단했다. 중국과 외침에 의해 우리 역사가 조작됐다는 설명을 듣고 눈이 확 뜨였다. '국회의원 열 번 하면 뭐하나? 잃어버린 우리 위대한 역사를 찾아야 한다. 특히 발해는 사라진 역사가 됐다.' 스님 말씀을 듣고 조사해 보니 깜짝 놀랄 정도였다. 발해 3대왕 대흥모(대조영의 손자)의 둘째 공주 정혜, 넷째 공주 정효의 무덤에서 나온 비석문 1천400여자가 발해가 직접 남긴 역사의 전부였다. 소설을 쓰면서 방대한 중국과 우리의 역사 기록을 뒤지는 수밖에 없었다.

-'대발해'를 쓴 이유가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이라고 들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생각하나?

한마디로 대응이 없다는 말이 맞다.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정신적인 문제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경제성장이 멈추고 외환위기가 오면서 주눅이 들어버렸다. 기가 죽었다. 두번째는 중국의 경제력에 기를 빼앗겼다. 더 큰 문제는 올림픽이 끝나면 동북공정이 본격화돼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동북공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진단하나?

"중국은 과거 문명의 기원을 황하 문명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요하 문명은 동이(東夷)의 것이라 주장했다. 근자에 중국이 요하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중국 문명의 시원이 1천년이 앞선 요하 문명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당황했다. 오랑캐 것으로 생각했던 요하에서 한자를 비롯한 중국 문명의 시초가 발견됐다. 급기야 몇해 전 중국 문명의 기원이 요하라고 중국 교과서를 바꾸었다. 중국으로선 동북공정을 해야만 요하 문명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본토는 만리장성 안쪽이다. 그 바깥인 요하지역은 우리나라 땅이었다. 요하의 핵이 바로 (고)조선이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대발해를 통해 들려주고픈 이야기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은 정말 웅혼하고 장대했다. DNA는 안 변한다. 우리 민족의 피를 알게 된 것이다. 과거 발해 역사를 봐도 중국을 침략해 수차례 항복을 받아냈다. 나당 연합으로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욕하지만 사실을 봐야 한다. 신라는 8년 전쟁을 통해 당을 몰아냈다. 군사도 10여만에 불과했는데 당나라 100만 대군을 압록강 너머로 쫓아냈다. 이 위대한 역사를 우리 학자들은 안 썼다. 오히려 중국 역사책에서 이 모두를 찾아냈다. 우리 기록은 중국 침략 과정에서 철저히 소실됐다. 김부식, 일연이 역사를 쓸 때도 중국 기록을 그대로 베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격정적인 어투로 우리 민족사를 이야기했다. 앞서 내용은 그가 1시간에 걸쳐 말한 내용의 일부만 옮긴 것이다.)

◆죽도록 힘들었지만 글을 써야만 했다.

-3년간 두문불출하고 글을 썼다고 들었다. 건강상태는 어떤가?

"하루에 12시간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매일 원고지 20매 이상 썼다. 햇빛도 안 봤다. 3년간 외부 사람을 안 만났다. 결국 병을 얻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서 물도 안 마시고 햇빛을 안 봤더니 햇빛 알러지, 요로결석, 오른팔 마비가 왔다. 아직도 매주 이틀은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 하룻 밤에 수십만명도 죽였지만 (소설 속에서) 꿈에는 병졸이 돼서 매일 쫓겨다닌다. 놀라서 잠에서 깬다. 수면제를 안 먹을 수가 없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글을 썼나?

"'대발해'를 쓰면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정말 황홀하고 행복했다. 역사를 발굴해 보니 미친듯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에서 수차례 만류했다. 그러다가 당신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말했다. '차라리 쓰고 죽겠다.' 사전조사를 끝내고 글을 쓴 것만 2년, 고치는 데 8개월이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일어나면 글이 써졌다. 원고지 1만2천매를 썼다."

-한때 담배를 많이 피웠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피우지 않고 있나?

"37년여를 피운 담배를 2002년 5월 8일 끊었다. 법륜 스님이 진행하는 경북 문경의 '깨달음의 장'에 들어가서 끊었다. 6개월간 금단현상 때문에 애를 먹었다. 나머지 6개월은 이겨내느라고 힘이 들었다."

-요즘도 아내가 그리운가? (아내 이화영씨는 지난 2004년 3월 20일 숙환인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한창 총선을 준비 중일 때였다. 아내가 떠나고 며칠 뒤 그는 낙선한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첫 시집 '한 잎의 사랑'을 펴내기도 했다.)

"때가 되면 생각난다.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왕 간 사람이고, 나도 언젠가는 간다. 시차가 있을 뿐이다. 아내는 대학 때 같은 하숙집에 살면서 만났다. 그렇다고 하숙집 딸은 아니었다. 허허허. (그는 아내에 대한 말을 아끼는 듯했다.) 지금 아들은 회사에 다니고, 딸은 구두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에 다시 유학을 갔다."

◆'공업용 미싱' 발언은 정당과 언론의 작품이다.

-엉뚱한 질문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는 '정말로'라는 한마디를 한 뒤 한참을 생각했다.) "국민의 가슴을 정확히 읽고 싶다. 국민에게만 무릎을 꿇고 싶다. 명예나 후세의 평가, 역사, 이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로지 국민에게만 무릎 꿇고 국민 다수가 행복해지도록 하고 싶다."

-만약 사사건건 국민의 반대에 부딪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들여다보며 느꼈다. 처음부터 터놓고 이야기했더라면 여기까기 올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광우병 때문에 4천500만명 중 한 명이 죽으면 그 확률은 너무나 미미하다. 하지만 죽은 당사자에게는 확률이 100%다. 이것을 유념해야 했다. 처음부터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를 해결하려면 쇠고기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아울러 30개월 이상 소의 이상 부위는 수입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등의 안전장치를 했어야 했다. 그것을 간과했다."

-국회의원 시절은 어떠했나? (그는 15, 16대 국회의원 8년간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의정평가 1위를 지켰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한번은 중국에서 가져온 혈액제제를 국내 유명 제약회사가 두 번 하도록 규정된 검사를 한 번밖에 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다.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더니, 나중에 제약회사 측에서 달려왔다. 다시 검토했더니 중국에서 1차 검사를 하고 국내에서는 2차 검사를 한 것이었다. 난 중국에서 검사한 자료만 본 것으로 판단한 것이었다. 실수였다. 바로 회사 관계자에게 사과했다. 회사를 찾아가서라도 사과하겠다고 했더니 국회의원이 이렇게 사과하는 것을 처음 봤다고 말했다. 언론사에도 사과문을 일일이 보냈다. 하지만 다른 국회의원들은 사과할 줄 모른다."

-'공업용 미싱' 발언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는 1998년 5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 연설회에서 '사람이 죽으면 잘못한 만큼 염라대왕이 바늘로 뜨는데 김대중 대통령과 임창렬 후보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사람들을 많이 속여서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한마디로 정당과 언론이 만든 거다. 그 기록을 자세히 봐야 한다. 왜냐 하면 똑같은 말을 내 책에서도 했기 때문이다. 1986년쯤이었나? 이경규와 최수종이 진행하는 몰래카메라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말했다. 두 사람이 하도 사람들을 많이 속여서 염라대왕 앞에 가면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이라고. 그때는 온 국민이 웃었다. 같은 맥락에서 비유로 한 말이었다. 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치인들이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서 비유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김홍신이 아무개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는다고 했다'로 나왔다. 앞뒤 말을 다 잘라버렸다."

-앞으로의 계획은?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정치와의 인연을 묻자) 지난 정부 시절에 장관급 자리를 세번이나 권유받았지만 고사했다. 나는 글쓰는 사람이다.(그는 현재 주 2, 3회 정도 강연을 한다.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책의 저자이지만 정치를 시작하면서 책이 안 팔려 인세 수입도 거의 없다 했다.) 자신의 존재와 자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삶의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하고픈 곳이 있다. 앞서 말한 경북 문경에 있는 '깨달음의 장'이다. 정동영씨가 대선·총선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뒤 힘들어할 때 이곳을 추천했는데 다녀와서는 아주 만족스럽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선 취재진에게 그는 대문 밖까지 따라나와 인사를 했다. 아내가 없다 보니 대접이 소홀했다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wnet.co.kr

▨ 김홍신은?

194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1981년 발표한 장편소설 '인간시장'은 국내 최초로 100만부가 넘게 팔린 밀리언 셀러로 기록됐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8년 내내 의정평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500여표 차이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지난해 발해의 역사를 재조명한 '대발해'를 펴냈고, 현재 강연을 다니며 과거 집필했던 '삼국지' 수정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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