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현대미술가협회가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 육성하기 위해 폐교된 가창초등학교 우록분교를 임대해 조성한 가창 창작스튜디오가 다음달 오픈 1주년을 맞는다. 화가들의 창작 활동을 일정 기간 지원해 주는 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가창 창작스튜디오 개소는 지역 미술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지난 1년간의 운영 성과와 문제점, 개선 방안을 짚어본다.
▨성과
대구·경북은 한강 이남에서 가장 많은 미술대학이 있는 곳이다. 해마다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전무했다. 특히 광주, 대전, 청주에도 있는 창작스튜디오가 대구에는 없었다. 이런 가운데 6개월에서 1년까지 작업실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창작 환경을 지원해 주는 가창 창작스튜디오 개소는 젊은 작가들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입주 작가들은 일정기간 경제적 부담 없이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국립 창동, 국립 고양 등 타지역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전시 기회도 갖게 됐다.
또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가 있지만 1~3기 입주 작가 가운데 박경아, 조용호 등이 렉서스 갤러리 등에서 전시를 가졌고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2기 입주 작가 오픈스튜디오에서는 작가당 2, 3점 이상의 그림을 판매하는 성과도 올렸다.
▨문제점
가창 창작스튜디오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대구시도 가창 창작스튜디오의 필요성을 인식해 지난해 총 1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예산 지원 규모조차 정하지 못하는 늑장 행정으로 가창 창작스튜디오가 폐쇄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구시는 창작스튜디오 지원 명목으로 9천500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놓고도 이를 집행하지 않고 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대구시교육청에 시설 임대료를 내지 못해 독촉장까지 받았다"며 "예산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운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시교육청과 협의해 무상 임대하는 방안 등을 찾다 보니 예산 지원이 늦어진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예산뿐 아니라 운영 방식도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창 창작스튜디오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작가 인큐베이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설립 취지가 무색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만 제공할 뿐 워크숍 및 세미나, 갤러리 관계자들과의 만남 등 작품성을 높이고 상업성을 담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 입주 작가들이 홀로 설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어렵다는 것. 김옥렬 MJ갤러리 수석큐레이터는 "현재 가창 창작스튜디오에는 하드웨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없다"며 "작업실이 없어서 작가들이 가창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려는 것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대구현대미술가협회가 타지역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을 초청해 1년에 한번 여는 전시도 도마위에 올랐다. 타지역 창작스튜디오에서 가창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를 초청하지 않아 교류전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록분교 안에 가창 창작스튜디오와 전시 공간인 '대안공간 스페이스 가창'이 함께 있는 것도 논란이다. 원래 대구시 중구에 있는 전시 공간이 지난해 9월 이전된 것. 접근성이 떨어지는 가창 창작스튜디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구 시내에 전시 공간을 두는 것이 바람직했지만 관리 편의를 위해 두 시설을 한곳에 모았다는 비판이다. 이 밖에 엄격한 작가 선정 기준 마련과 입주 기간이 짧은 것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개선방안
지역 미술계 인사들은 프로그램 매니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작가들의 치열한 작업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전국 미술관, 화랑 관계자들에게 보내고 전시를 주선하는 등 작가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한 입주 작가는 가장 아쉬운 점으로 매니저의 부재를 꼽았으며 박소영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도 "작가들과 창작스튜디오 운영팀 사이를 중재하고 작가들을 프로모션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기숙갤러리와 MJ갤러리가 상업화랑으로는 드물게 작가 육성 프로그램인 '멘토링'을 시작한 것은 가창 창작스튜디오 운영 방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구시는 특정 단체에 많은 예산을 지원할 경우 형평성 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가창 창작스튜디오가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예산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임대료와 운영비도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매니저를 두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도 대구시 지원만 바라보지 말고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 후원금을 모집하는 등 예산 부족을 조금이라도 메우려는 노력과 함께 운영 방안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적은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하며 예산만 뒷받침되면 더 많은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부족한 돈을 쪼개 여러 가지를 시도한 뒤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한 미술계 인사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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