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장님] 무형문화재 이장 백광훈씨

옹기부문 경북무형문화재 보유자

자신의 옹기 가마 앞에선 \
자신의 옹기 가마 앞에선 \'무형문화재 이장\' 백광훈씨 부부.

영덕군 지품면 오천2리의 백광훈(58) 이장은 전국에서 유일한 '무형문화재 이장님'으로 통한다. 옹기부문 경북무형문화재(25호-나)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57가구에 주민 107명이 사과·복숭아·배 농사를 짓거나 송이버섯 채취 등으로 생업을 잇는 영덕군 내륙지역인 오천2리.

그는 2006년 "행정기관 등에 아는 사람이 많은 장점을 살려 좋은 마을을 만들라"는 어르신들의 권유에 따라 이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최근 대도시에서 대학을 나온 28세 된 아들이 '가업을 물려 받겠다'는 말에 오천2리가 더욱 애착이 간다고 했다. 70여년 전 조상들이 정착한 고향땅인데, '내 대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의기소침했지만, 이제는 "뼈를 묻고 자손들이 살아갈 고향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에 신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그의 이장직 첫 작품은 마을의 주된 수입원인 '송이산 보호'를 위해 외지인 입산을 금지시킨 것. 여느 농촌처럼 오천2리도 주민 가운데 60세 이상이 87%인 노령화 마을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는 거의 없다. 가구마다 연간 1천만원의 소득을 안겨주는 송이 수입 덕분이다.

주민들이 가을 한달동안 마을 공동 소유인 산에 올라 송이를 채취한 후 그 수입을 똑같이 나누고 있다. 그런데 최근 외지인들이 약초 등을 캐기 위해 자주 입산하면서 산불에 대한 우려가 커졌으나 통제할 방법을 찾지 못해 걱정이었다.

다각도로 알아본 결과 군 산림과에서 법으로 보장된 '산불 감시 및 임산물 보호 감시원' 신분증을 만들어 공식적으로 외지인의 입산을 금지시킬 수 있었다. 백 이장은 "외지인들은 심한 처사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산불이 나면 수십년간 송이를 채취할 수 없다"며 "그 후 산불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또 침체된 마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매월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잔치 비용은 경로회 기금이나 출향인 등의 협찬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매번 읍내에서 재료를 사와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만만찮았다. 이 일은 70대 할머니들까지 포함된 마을 부녀회(32명)가 나서면서 해결됐다. 마을에 경로잔치가 열리는 날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술잔이 오가면서 노래방 기계에 따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고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놀이패가 흥을 돋웠다.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풍물놀이패 새끼줄에 지폐를 꽂아 매번 100만원가량의 마을 기금도 모으고 있다.

주민들이 수고비조로 매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이장에게 전하는 일명 '모곡제'도 없애 버렸다. 그는 또 동네 마을 쉼터를 만들기 위해 개인 소유 옹기체험관 예정 부지 가운데 일부인 120여㎡를 내놓았다. 이곳에다 농촌기술센터에서 1천여만원 등을 지원받아 정자를 짓고 운동기구를 설치할 예정이다.

그러다 보니 원래 인심이 좋은 오천2리였지만 백 이장이 나선 후 더욱 후덕해졌다는 것이 지품면의 여론이다. 오천2리 주민들 사이에는 마을을 위한 봉사활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 얼마전에는 마을회관 앞의 평상 2개가 썩어서 새로 구입하려 했는데, 과거 목수일을 하신 80세 어르신이 직접 만들어 기증하기도 했다.

백 이장의 활약에는 36년을 동고동락해온 부인 박옥난(55)씨의 내조가 절대적이었다. 옹기 제작 특성상 작업장에 항상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그가 마을 일을 위해 외출하면 번번이 박씨가 궂은 일을 도맡아 해 왔다.

경로잔치 때도 먼저 나서 음식을 장만하고 풍물패에서 장구를 두드리는가 하면 지품면 적십자회장직을 맡아 홀몸노인들에게 생필품을 지급하는 일에도 열성이다. "오천2리는 작은 것을 함께 나누며 기뻐할 줄 아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진 마을이지요." '행복한 이장'의 '사랑하는 마을' 자랑이다.

영덕·박진홍기자 pj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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