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도를 찾았다. 남해도는 통영과 더불어 내 여행길의 중심에 있다. 내 마음의 고향인 미조항, 백사장이 아름다운 상주 해수욕장, 보리암이 있는 금산이 여기에 있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가깝다. 하지만 이번에 찾은 것은 통제사를 만나기 위함이다. 남해도는 통제사의 마지막을 만날 수 있는 섬이다. 마지막이란 단어는 슬프지만 아름답다. 통제사를 만날 때마다 울음을 울었던 칼은 언제나 나에게 말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도 결국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결국 모든 것은 흐름에 맡겨져 있다고. 지나간 시간이 남긴 공간에는 버려진 약속들만 떠돌고 있다고. 통제사처럼 영웅도 아니고, 김훈처럼 유명한 작가도 아닌 나는 그들보다 더욱 쓸쓸해서 속울음을 울었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김훈, '칼의 노래' 부분)
노량에 왔다. 금방 건너온 남해대교가 햇빛 사이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충렬사. 여기는 통제사께서 관음포에서 전사하신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곳이다. 지금도 통제사의 가묘가 남아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충렬사 계단을 올랐다. 충렬사는 통제사의 여러 사당 중에서 규모가 작은 편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아담한 담장 너머에 몇 송이의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충렬사 정문에서 바라보는 노량이 햇빛 사이로 고즈넉하게 반짝거렸다. 통제사의 마지막 싸움은 자신만의 절박한 선택이었다. 물러갈 길을 달라는 것이 왜적의 마지막 요청이었고 원군이었던 명도 그것을 용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통제사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난 7년간, 저 바다에 수많은 전우를 묻었다. 우리 손으로 이 전란을 끝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 조선 백성의 한을 씻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인의 굴레를 벗을 수 없을 것이다.(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대본 부분)
통제사는 다시 올 수 있는 불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적을 섬멸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언젠가는 다시 조선으로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또한 7년 동안 수많은 부하들과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은 그들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나아가 통제사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었던, 적에 의한 자연사를 스스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통제사의 그런 선택이 지치도록 쓸쓸했다. 전장에서의 죽음은 일상이지만 영웅에게든 보통 사람에게든 똑같이 두려운 법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김훈, '칼의 노래' 부분)
충렬사 오르는 계단에 앉아 노량 바다를 오랜 시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바닷바람 사이에서 죽어 없어져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백골의 허망을 슬퍼하는 통제사의 번민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제사의 마음처럼 비록 견딜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에서라도 오랫동안 살고 싶었다.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비겁이라도 그 비겁조차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 충렬사 앞바다에 정박한 거북선이 보였다. 거북선 선체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흔들리고 깃발이 해풍에 나부끼고 있었다. 풍경은 기억을 만든다. 바람에 실려오는 바닷내음에 노량의 기억을 저장했다. 통제사의 생물적 끝장을 쓸쓸하게 저장했다. 감당하지 못할 절망 속에서도 수많은 적과의 싸움으로 지친 통제사의 쓸쓸한 마음을 저장했다. 내가 지금 내리는 결정과 판단도 항상 옳은 것이 되도록 통제사에게 빌었다. 쓸쓸한 마음이 절실했다. 통제사의 마지막 흔적을 만나기 위해 관음포로 향하면서 뒤돌아본 노량 바다가 문득 고요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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