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 어머니의 눈물

며칠 전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한 분이 상담을 하러 왔다. 그 학부모는 자녀가 언어장애를 앓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하소연을 했다.

언어장애란 것은 누구나 한번 오기 시작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언어에 의해 모든 사물을 인지한다. 언어는 또 두뇌의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 말을 더듬는 것은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 날숨과 들숨이 말을 하려는 뇌의 신경과 부조화를 이루면서 말을 더듬기 쉬운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 때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데 대부분은 자연치료가 되지만 일부 학생은 계속 말을 더듬는 경향이 있다. 이럴 경우 입 모양과 숨쉬는 조절 훈련만 잘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다. 혹 대인기피증의 영향으로 호르몬의 부조화에서 오는 언어장애는 오랜 시간 전문가의 훈련이 필요하다.

필자는 2005년 5월 대전의 한 청소년수련원 대강당에서 많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정서불안 진단과 치료 방법'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많은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은 어릴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필자 또한 어릴 때 대인기피증으로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인기피증의 일반적인 증상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펴질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고개가 숙여지며 심하면 말하는 기능이나 웃는 기능이 정지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어릴 때 기억은 눈물밖에 없다. 이상하게 울고 나면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 마음이 변하면 죽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지키고 있었다. 필자가 좌절에서 일어선 것은 "원수야! 남들이 너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마, 남들은 모두 눈먼 봉사야"라면서 다독이는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는 거의 전부였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만 빼곤 모든 사람이 눈먼 봉사라고 생각했다. 걱정하던 어머니는 1976년 중3 여름방학 때, 6월에 수확한 보리를 팔아 마련한 4만원으로 마산에 있는 언어교정소에 필자를 보냈다.

어머니의 눈물은 '아, 에, 이, 오, 우'부터 시작하는 언어를 목에 피를 토할 정도로 뒷산에서 연습하게 하는 힘이었다. 나무를 상대로 '사람'이라 생각하고 내 마음속을 지배하는 대인기피증을 없애려고 외쳤다. 어머니는 그런 자식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했다. 주위에서 '원수가 아마 미쳤는가 봐'하면서 수군거렸다. 어머니의 눈물만 생각하면 필자는 미쳐도 좋았다. 그렇게 3년 동안 미치고 나니 하늘이 놀랐는지, 대인기피증이 사라지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이 20세였다. 내가 28세에 교사가 된 것은 눈물로 이룬 어머니의 인간 승리였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힘보다 더 큰 힘은 이 세상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학생들은 '어머니의 눈물'을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원수(경운중 교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