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권의 책] 입춘대길 코춘대길

공부에 찌든 아이 '옛날이야기'로 술술~

문학, 특히 소설의 기원은 이야기이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문학은 있었다. 보통 구전문학, 구비문학이라고 불리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작자미상'이 많다.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전해지면서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게 꾸며진다, 때론 비슷한 이야기인데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예전엔 까막눈 할머니들도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혀 '옛날 아주 먼~옛날…'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아이들의 감성과 상상력, 창의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할머니의 체온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훌륭한 교육이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이가 직접 책을 읽는 것만큼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문장을 잘 읽고 이해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글을 일찍 배우고 조기교육, 학원 과외 등으로 아이들이 옛날 이야기를 들을 기회나 들려줄 사람조차 거의 없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동화와 소설을 쓰는 서정오 선생의 '입춘대길 코춘대길'은 서른 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달팽이는 어떻게 집이 생겼는지, 며느리밥풀이 어떻게 피어났는지, 술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하는 내력 이야기들이 있다. '고시레'하고 밥을 던지는 농사나 풍속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도 나온다. 봄 햇살처럼 따뜻한 인정과 바람처럼 재치있는 이야기도 있다. 그냥 크게 한번 웃어넘길 만한 것들도 있다. 공부와 컴퓨터에 혹사당하는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준다.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밥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불쌍한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며느리밥풀')의 한 부분을 옮겨봤다.

"며칠 동안 밥 한 술 제대로 못 먹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 창자가 말라비틀어지는 것 같지. 그래도 꾹 참고 밥을 펐어.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시동생, 시누이 밥까지 다 푸고 나니 아니나 달라, 남는 밥이 없네." 며느리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밥주걱에 붙은 밥알 몇 개를 뜯어 먹다가 시어머니에게 들킨다. "며느리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지만 시어머니는 용서를 안 해. 다짜고짜 달려들어 밥주걱을 빼앗아서는, 그걸로 며느리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지. 시어머니 손에 살이 끼었던지, 그 바람에 며느리는 그만 밥알을 입에 문 채 죽어 버렸어. 며느리가 죽고 나서 무덤을 썼는데, 이듬해 봄이 되니 그 무덤에서 파란 풀이 돋아나더래. 그리고 그 풀이 자라서 꽃이 필 때 보니까. 빨간 꽃잎 속에 하얀 밥알 같은 게 붙어 있더래. 그래서 사람들이 그 풀을 가리켜 며느리밥풀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야."

작가는 이처럼 이야기를 입말(구어체)로 곁에서 들려주듯 써내려갔다. 그는 1996년 이런 문체로 '옛 이야기 보따리'를 출간해 당시 '~습니다'로 끝나는 옛날이야기 시장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문체를 통해 감칠맛 나는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재미와 건강한 교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아이에게 이 책을 사서 읽으라고 주기보다는 부모님이 먼저 읽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1. 책을 읽고 재미있는 이야기 몇 가지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로 들려주자.

2.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을 통해 며느리밥풀을 찾아보자.

3. '고시레'(고수레)의 유래에 대해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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