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했다는 대구 파동초교 1학년 정현우(7)군. 올 2월 한자능력검정시험 6급 합격 소식을 듣고선 한자 공부에 재미가 더 붙었다. 시험에 통과했다는 성취감에 의욕이 생긴 것. 정군은 유아 때부터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할아버지와 붓글씨가 취미인 할머니의 영향으로 한자를 접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김은옥(39·대구 수성구 파동)씨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히다 보니 언제부턴가 스스로 한자 부수를 끼워 맞추면서 공부했다"며 "가끔 어른들도 잘 모르는 한자까지 외우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다양한 문자를 느끼는 게 좋을뿐더러 앞으로 국어 공부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정군에게 매일 10분 정도 한자를 공부시키고 있다.
◆한자, 조기 교육 열풍
한글을 막 떼기 시작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들 사이에서 한자공부 열풍이 일고 있다. 3, 4년 전부터 그림으로 여겨지는 한자를 5~7세 정도 나이에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조기 한자공부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조기 한자공부는 가정방문 학습지를 통해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다. 대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구몬과 대교, 웅진, 재능, 장원 등이 한자 학습지를 내놓고 있다. 이들 학습지는 한달에 2만5천~3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일주일에 한차례 방문 교사가 가정을 찾아 한자 공부를 지도하고 있다. 장원한자의 경우, 대구 지역에만 전체 2만명의 회원 가운데 25% 정도가 유아나 유치원생이다. 장원한자 성정화 대리는 "유아나 유치원생은 글자의 변형 과정이나 한자 모양 등 그림 중심으로 읽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초등학교 저학년은 쓰기 위주로 가르치는 등 맞춤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자 능력을 평가하는 국가 공인 시험들도 최근 많이 생겨 현재 한국한자능력검정회를 필두로 한국평생교육평가원, 대한검정회, 상공회의소 등 국가 공인 한자시험만 7개가 넘는다. 한자능력시험 결과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거나 대입 특별전형 등에 반영되면서 시험을 치려는 어린아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초교 가운데서 한자를 교과시간에 넣어 한자 교육에 열의를 보이는 학교도 적잖다. 남덕초교(대구 남구 대명9동)는 지난해부터 '창의력 한자교육'이란 이름으로 일주일에 한시간씩 한자 공부를 시키고 있다. 지난해엔 전교생 400명을 대상으로 한자능력검정시험과 수준이 비슷한 시험을 별도로 치렀다. 230여명의 합격자에게는 학교장 인증서도 나눠줬다. 이뿐 아니라 2주 전엔 '사자소학' 책자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1주일에 두차례씩 아침에 시청각교육도 하고 있다. 양병림 교장은 "어릴 때부터 한자를 익혀놓으면 사회생활은 물론, 인성 교육에도 큰 보탬이 될 것 같아 한자 공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했다.
◆국어교육의 바탕에서 이뤄져야
교육 전문가들은 한자교육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과도한 조기교육 열풍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교대 국어교육과 이강엽 교수는 "한자 공부는 국어의 어휘력을 넓힐 수 있고 어릴 때 배우면 오래 기억되기 때문에 필요하지만 단순히 능력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은 무리"라며 "천자문의 경우, 실제 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단어가 많은데 무작정 외우게 하면 또 다른 부담"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한자를 가르칠 때 놀이 삼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신명고 이재권 한문 교사는 "초교 3, 4학년 때부터 한자를 익혀도 늦지 않으며 오히려 너무 일찍 한자 공부를 하면 한자에 싫증을 느끼게 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국어교육학과 김문기 교수도 "한자는 언어가 아닌 문자이기 때문에 고전을 해독할 능력을 키우기 위해 배우는 것인데 마치 한자 교육이 필수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된 풍조"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지나친 한자 공부는 인지 발달과 지식 수용에 한계가 있는 아이들에게 다른 소질 계발을 가로막고 학습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 게임을 통한 한자 익히기
아이들에겐 한자가 딱딱하게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게임을 통해 즐긴다면 큰 부담 없이 한자와 가까워질 수 있다. 전국한문교사모임이 게임을 통해 한자를 익힐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따라해 보면 어떨까.
▷등에 쓰기=2명이 할 경우, A학생이 예를 들어 '日'자를 "이건 '해'를 뜻하는 '날 일'이야"라며 B학생의 등에 쓰면, B학생은 종이에 쓰고 이것을 A학생이 맞는지를 말해준다. 이런 방법을 맞을 때까지 계속 써본다. 사람이 많을 경우, 두 팀으로 나눠 일렬로 세워놓고 같은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해서 가장 빨리 쓴 팀이 이기는 경기를 할 수도 있다.
▷몸으로 한자 만들기='大' 모양을 만들고 '크다 대'라고 20번 외치기를 한다거나 '米' 모양을 두사람이 만들게 해서 3분 이상 버티기 등을 할 수 있다. 이를 벌칙으로 이용해도 좋다. 벌칙이 아닌 팀별로 할 때는 두사람이 누워서 '入'이나 여러 사람이 '加' '言' 등을 만들게 하고, 그 한자의 음과 뜻을 여러 번 외치게 한다.
▷한자카드=부수끼리 만난 4개의 한자를 찾아 10개의 부수카드를 만든다. 만약 '埋'(묻다 매), '襲'(엄습하다 습), '委'(맡기다 위), '臭'(냄새 취)를 학습할 경우 (土, 里), (龍, 衣), (禾, 女), (自, 犬)의 뜻이 무엇인가를 각자 학습하고 카드를 만든다. 그런 뒤 부수 카드를 엎어놓고 섞은 뒤 두사람끼리 5장씩 나누고, 상대방이 볼 수 없도록 손에 든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상대방의 부수카드를 한 장 뽑아온다. 뽑아온 카드와 손에 든 카드로 해당하는 한자가 만들어지면 내려놓고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대로 들고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상대방이 자신의 카드를 뽑게 한다. 이런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해서 손에 카드가 하나도 남지 않으면 이긴다.
▷전투 작문=진행자가 먼저 칠판이나 종이에 10자 정도의 기본한자를 쓴다. 한자 밑에 음과 뜻을 써주는 것도 좋다. 다음의 한자로 예를 들어보자.(善, 美, 進, 有, 惡, 地, 子, 鳥, 大, 山) 진행자가 '2자'라고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은 10자 중 2자를 뽑아 한문(문장)을 만든다. 가장 빨리 대답하거나 해석을 멋있게 하면 점수를 준다. 이후에 3자나 4자로 글자수를 늘려나간다.
전창훈기자
도움말·전국한문교사모임 이병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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