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책 읽어주는 아빠

주말에 가족과 함께 서점에 갔다. 서점에는 자녀와 함께 책을 사거나 구경하러 온 엄마들로 북적거렸다. 그 많은 아빠들은 어디에 가서 함께 오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한쪽에서 엄마가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을 타박했다. "어째 중학생이 읽을 책도 한권 고르지 못하냐! 그냥 저쪽 청소년 권장도서 코너에 가서 아무거나 한권 골라라." 그리고 그 엄마는 여성지를 뒤적이며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기사를 훑어봤다. 오지랖 넓게도 서점 직원에게 물어봤다. 직원은 이런 일은 흔한 풍경이며 심지어 엄마와 아들이 책 고르는 일로 크게 다투는 일도 가끔 있다고 귀띔해줬다.

독서의 중요성은 알고 있는데, 자녀에게 어떤 책을 권하고 어떻게 책을 읽도록 지도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해하는 부모들이 많다. 30, 40대 부모들은 입시 공부에 찌들려 여유롭게 책 한권 제대로 읽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에 가서도 도서관을 취업준비를 하는 곳으로 여기며 대학시절을 보낸 세대들이다. 책 읽는 습관은커녕 읽은 책이 몇 권 되지도 않은 부모들에게 충실한 독서지도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부모는 소파에 엉덩이를 밀어넣은 채 TV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면서 자녀에게 '책 좀 읽어라!'고 큰소리치는 것은 교육적으로 효과가 없으며 바람직한 모습도 아니다.

자녀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고, 삶의 지혜를 얻도록 해주고 싶다면 책을 많이 읽도록 도와줘야 한다. 지식기반 정보화사회에선 컴퓨터 활용 능력과 인터넷을 통한 단편적 지식 습득보다 독서의 힘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의 감성을 사로잡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도,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데도 '스토리'가 중요하다. 스토리는 풍부한 독서량에서 비롯된 창의력과 상상력에서 숙성될 수 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열려라 참깨!'란 문학적 상상이 없었다면 오늘의 자동문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영국은 올해를 '전국 독서의 해'(National Year of Reading)로 선포했다. 정부와 민간단체가 함께 독서 장려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에 146명의 캠페인 담당자를 선정했고, 3천700만파운드(689억원)의 예산도 마련했다. 영국은 10년 전에도 이런 사업을 벌였다. 지식산업시대에서 승부를 걸기 위한 영국 정부의 야심 찬 사업이다. 이 캠페인은 독서문화를 직장과 지역사회 등 전방위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특히 부모가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대구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시작됐다. 2005년부터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시작으로 책읽기와 글쓰기의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는 대구시교육청이 최근 '자녀에게 책 읽어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교육청은 구호성 캠페인에 그칠 수 있다는 걱정에 이달부터 유치원이나 초교생(1~4학년)을 대상으로 '부모가 책 읽어 주는 것 듣고 오기' 숙제까지 내고 있다. 아마 대부분 가정은 자녀 숙제를 엄마가 도와 줄 것이다. 여러 숙제 다 해봤지만 책 읽어주기 숙제까지 해야 하다니.

이번 기회에 자녀교육에 뒷짐만 지고 있던 아빠들이 나서보자. 책 읽어주는 숙제만큼은 아빠가 맡아주면 어떨까? 내친김에 저녁 시간에 TV를 끄고 하루 30분이라도 자녀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가져보자. 자녀에게 아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자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부친력'(父親力)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단다. 자녀교육에 헌신하는 아빠들을 상징하는 신조어이다.

며칠 남지 않은 가정의 달, 잃어버린 당신의 자리를 되찾고 싶다면 지금부터 '책 읽어 주는 아빠'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교영 사회1부 차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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