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소통의 조건

미국 쇠고기 광우병 논란이 불거진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22일,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거듭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비판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점점 더 강도를 더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머리까지 숙였으면 국민들이 이해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섭섭한 마음도 생길 터이다. 하지만 그 국민이 어떤 국민인가?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잘못된 통상협상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정치세력이 총선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것 때문에,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하고, 직무정지를 당하고,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에까지 몰리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이다. 대통령이 머리를 숙이는 것만으로 납득할 국민들이 아닌 것이다.

대통령의 권위도 생각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볼멘소리도 나올 법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위는 지난 10년 동안 철저히 무너져내렸다. 술자리의 농담으로도 어울리지 않을, 대통령에 대한 저주와 욕설에 가까운 거친 말들이, 야당과 그 지지자들의 공식회의와 집회에서는 물론이고, 스스로를 '주류'라고 부르는 대형신문의 지면에서 일상적으로 흘러넘친 결과이다. 그 탄핵과 저주와 욕설을 외쳤던 바로 그 입으로 대통령의 권위를 내세우고 대통령이 머리 숙였으니 다 덮자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염치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괴담'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광우병이 심각한 병이라는 것, 한미 쇠고기협상의 결과 대한민국 국민들이 광우병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게 되었다는 것, 협상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충분히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은, '괴이한 이야기'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로 밝혀졌다. '좌파의 선동' 탓이라는 주장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12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인터넷 탄핵 서명을 하고, 수만 명에 이르는 남녀노소가 촛불을 들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취임 2개월 만에 20%대로 떨어진 것이 모두 좌파가 선동한 결과라면, 그 좌파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마법사이고, 그 국민들은 그저 선동에 휘둘린 바보라고 하는 '괴담'이 되어 버리는 까닭이다.

둘러대는 것으로는 피할 수 없다. 정부의 어설픈 해명들은, 하룻밤만 자고 나면, 인터넷에서 찾은 각종 증거와 사실로 뒷받침된 네티즌들의 반박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졌다. 당황한 정부가 거듭 말을 바꾸는 바람에 그만큼 신뢰만 떨어졌다. 또, 억누르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4·19를 불의에 항거한 학생들에 의한 혁명이라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로 하여금, 정부의 실책을 비판하기 위해 돌멩이도 아니고 그저 촛불을 들겠다는 학생들을 퇴학시키겠다며 윽박지르게 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교육적이지 못하다. 신문과 방송이 전하지 않는 경찰의 시위 진압장면은 웹캠과 디카와 핸드폰 문자를 통해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둘러대려야 둘러댈 수도 없고, 억누르려야 억누를 수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취임 3개월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이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그런 대통령에게 미국 정부의 관리들로부터는 거듭 칭송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국민들의 지혜와 힘을 한데 모아 어려워져만 가는 국제 경제환경을 헤쳐나가기에도 바쁜 '실용'정부가, 국민들을 좌우라는 구시대의 잣대로 편 가르고, 짜증나고 허탈해서 힘 빠지게 만들고 있으니, 이런 '반실용'이 또 어디 있겠는가?

소통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국민의 눈높이로 올라서야 한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20여 년 동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부 수립 이후 60년의 헌정사 동안, 어렵게 어렵게 다져 온 21세기 대한민국의 상식에 맞추어야 한다. 그 상식은,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하려면, 사실에 입각해서 수긍할 수 있는 어법으로 진심을 담아 설득해야 하고, 잘못이 있을 때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나서야 한다. 이미 골이 깊다. 이대로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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