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김영무/아픈 장미

아픈 장미

김영무

폭풍의 밤에 길 잃은

벌레 한 마리

오두막 불빛 보고, 아-

네 품속 파고들었다

진홍빛 침대에 누워

한 밤 푹 자고 가게

창문은 열어두렴

겁내지 마라

곧 동이 튼다, 장미야

스무 살 나이엔 늙음이 보이지 않았다. 서른 살 나이엔 병듦이 보이지 않았다. 마흔 살 나이엔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생로병사의 깊고 깊은 뜻은 지천명, 하늘의 명을 알아들을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 알게 되었다. 사람의 평생에 어디 맑은 날만 계속될 수 있으랴. 까마득한 절망과 뼈 시린 고통 속에 벌레처럼 나뒹굴 수 있는 게 인생이다.

흰 시트를 끌어당기며 창밖을 바라보는 병상의 시인. 폭풍 속 유리창을 맴도는 벌레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노래한다. "겁내지 마라/곧 동이 튼다, 장미야." 장미라고 말했지만 실은 '진홍빛' 수술 자국을 지닌 자신의 병든 육신. 그래서 '아픈' 장미다. 폐암 3기 수술 회복실에서 바라본 폭풍 속 벌레 한 마리. 위로를 받을 사람이 도리어 위로를 건넨다. 위로가 위로의 등을 떠밀며 무서운 고통을 함께 건너간다. 겁내지 마라 장미야, 곧 동이 튼단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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