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오랜 세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숲을 찾아 나섰다. 그 중에는 인간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산림 속에 숨은 이도 있을 것이고, 숲속에 깃들어 사는 많은 생명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동안 삶의 참뜻을 터득하게 되길 바라면서 숲을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같이 평생 산만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특별히 산과 숲, 숲속의 고요함과 소란함, 질서와 무질서 안에서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세월의 변화를 금방 알 수 있다. 엊그제 내린 비로 산색이 더욱 윤택해지고 온 산천의 짙은 녹음이 곧 6월을 맞이할 숲이 되었다.
숲속에도 세상 도시와 같이 복잡한 세상이 있다. 그러나 숲속의 삶은 세상 도시의 삶과는 확실히 다르다. 숲속의 삶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물 흐르는 듯한 질서가 있다. 그리고 평온과 넉넉한 휴식이 있다. 고요와 평화가 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게는 깃들일 보금자리를 베풀어준다. 언제나 거부하는 일이 없다. 심지어 자신을 할퀴는 폭풍우까지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것이 숲의 미덕이다. 이러한 숲의 덕성과 질서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도시에도 숲이 있다. 언젠가부터 세상에서는 그것을 아파트숲이라고 표현해왔다. 높이와 모양이 거의 한 모양으로 같은 목적하에 빽빽이 모여 질서있게 세워진 건물에 어떤 지혜로운 이가 붙여준 이름인가 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숲을 이루지 않고 사는 곳은 없다. 그렇게 어울려 사는 것이 삶의 이치이고 공생공존할 때만이 세상 모든 살림살이가 제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숲을 이루며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질서와 무질서가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산속 숲속의 나무도 햇빛을 바라는 욕구가 강해서 다른 나무에 뒤질세라 위로 가지를 뻗고 자란다. 특히 젓나무는 한 가지 위로만 곧게 자란다. 그래서 一支(일지)나무다. 이렇게 위로만 곧게 한 가지로 자라면 주변에 버텨줄 게 없으니 결국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갈피를 못 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젓나무는 거의 부러지는 예가 없다. 그것은 저희들끼리 적당한 간격으로 무리를 이루어 갖가지 풍상을 오랜 세월 동안 이겨냈기 때문이다. 강직하게 한줄기로 위를 향해서만 자라는 속성이지만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젓나무. 남을 앞지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결국엔 스스로를 더 크게 키운다는 걸 몸으로 직접 말해주고 있다.
숲을 이루고 있는 것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흔한 나무 숲이 소나무이다. 운문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주문 입구에서부터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거목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사이사이 젓나무와 어울려 숲을 이루어서인지 풍상을 겪으며 몇백년을 견뎌왔을 터인데 휘어진 가지보다는 적당히 소나무의 곡선을 유지하며 청청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소나무는 모두 함께 푸르름으로 어울리는 계절에도 그러하지만 모든 나뭇잎들이 다 떨어진 침묵의 겨울에도 소나무 숲만은 특별히 독야청청한 자기 빛을 잃지 않는다. 또 운문사 도량 안에는 한 그루의 소나무가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나무는 술을 즐겨 드시는 소나무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한 그루의 커다란 숲을 대할 때마다 나는 단순히 나무가 아니라 크신 스승님 앞에 나지막이 자리한 제자가 된 심정이 된다. 건강한 육신과 정신으로 100년을 겨우 살까 말까 한 인간에 비하면 이 소나무는 500여년의 수령이 되었다니 그런 심정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그리고 이 나무는 소나무의 특성대로 위로 곧게 솟으며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처지면서 어울려 자라기 때문에 버팀목을 의지해야 할 정도이니 그 앞에서 누구나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여러 가지 나무들이 각각 자신의 색깔을 지니며 큰 나무 아래 작은 나무, 작은 나무 밑에는 여린 풀들이 자리하고 있다. 우주의 공간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스스로 있는 곳에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예부터 여럿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림이라 했다. 수행자가 화합하여 한 곳에 거주하는 전문 수도 도량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빽빽할叢(총), 수풀林(림) 이라고 한다. 운문산 숲속 못지않게 운문사 안에도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학인 스님들이 같은 목적을 향하여 자신이 서있는 위치(역할)를 잘 지키면서 숲의 생리를 실천해 가고 있다.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온 숲과 함께 맑은 아침을 맞이하면서.
일진 운문사 승가대학 학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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