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 오히려 손해죠. 고장 나면 폐차할 겁니다."
26일 오후 1시쯤 화물연대 대구경북지부 사무실이 있는 대구 서구 이현동 서구공영주차장. 화물차주들은 일손을 놓은 채 삼삼오오 모여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텅 비어 있을 주차장은 운행을 중단한 화물차들로 가득했다. 오한기 사무부장은 "예전에는 일하러 나가 텅 비는데, 요즘은 한낮에도 차 댈 자리가 없다"고 했다.
◆생존의 기로에 선 화물차주들
20년 넘게 화물차를 몰았다는 김선도(48)씨. 오후에 한건 뛰어야 하지만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밤잠 설쳐가며 운행을 해도 남는 게 없기 때문.(표 참조)
"아끼는 것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요."
오후 3시 30분에 왜관으로 가서 물건을 싣고 7시쯤 인천으로 출발할 예정이라는 그는 "예전 같으면 왜관에 차를 대고 대구에 와 잠시 쉬었다 가는데, 왕복 차비 3만5천원이 아까워 바로 인천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잠은 차에서 자고, 식사도 라면으로 해결하는 것이 다반사다.
오래된 차를 몰다 보니 연비가 좋지 않아 새 차를 구입하려 해도 엄청난 차값에 엄두도 못 내고 있다. 25t 트레일러 신차 가격은 1억2천만~1억4천만원. 20% 현금을 내고 할부를 해도 한달에 250만원씩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한달 그가 만져본 돈은 고작 130만원이다. 오래전 빚더미 인생이 시작됐고, 신용불량자가 돼 카드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일주일에 가족 얼굴은 한번 정도밖에 못 봅니다. 돈을 못 벌어주니 볼 낯도 없죠."
그래도 지금은 겨우 버티고 있다. 하지만 차에 문제가 생기면 '끝장'이다. 화물차는 수리비가 엄청나 보통 100만원을 넘기기 일쑤다. 미션을 가는 데만 340만원이 든다. "더 이상 돈 빌릴 데도 없으니 제발 무탈하게 굴러가기만 바라고 있다"고 했다.
◆ℓ당 2천원 넘으면 운행 중단
화물차주들은 운송회사에 내는 지입료, 보험료, 오일교환비 등을 내면 시급 5천원짜리에도 못 미치는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임금은 보름 늦게 받는 것이 관례지만 요즘은 서너달씩 늦기도 하고, 6개월짜리 어음을 주는 곳도 있다고 했다.
25t 트레일러를 모는 장영길(54)씨는 이날 18만원짜리 대구-경산 와촌 간 일거리를 하나 포기했다. 기름값을 빼고 나면 3만원이 남는데, 운행을 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판단에서다. 장씨는 "한달이라도 결제를 늦추려 신용카드를 이용하는데, 돈이 돌지 않으니 한도가 차 더 이상은 사용할 수 없거나, 여러개의 카드로 돌려막으며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름값이 오르면서 친지들에게 빚을 끌어 쓰는 안타까운 사정도 많다"고 전했다.
답답한 것은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화물차주들은 그나마 ℓ당 280원씩 지원되는 유류보조금으로 경유값을 일부 충당하고 있지만 ℓ당 2천원이 넘을 경우 운행중단 사태가 불 보듯 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6월 말로 끝나는 유류보조금 기한 연장을 검토하고 있지만 화물차주들이 요구하고 있는 면세유 확대 등은 형평성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유류보조금도 경유값이 1천원 때 책정된 것이어서 2배 가까이 오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차주들은 "고유가로 정유사들만 배를 불리고 있고, 화주-주선업 간의 운송료 계약이 공개되지 않아 운송료가 오르더라도 실제 차주들에게 얼마나 혜택이 돌아올지 의문"이라고 했다.
화물차주들은 기름값 때문에 생존의 끝자락에 몰려 있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野, '줄탄핵'으로 이득보나…장동혁 "친야성향 변호사 일감 의심, 혈세 4.6억 사용"
尹공약 '금호강 르네상스' 국비 확보 빨간불…2029년 완공 차질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