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속 시원하게 문이라도 닫았으면 좋겠습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44·북구 복현동)씨는 열흘 전 3명의 직원을 모두 내보내고 아내와 단 둘이 식당을 꾸려가고 있다. 워낙 손님이 줄어들다 보니 문을 열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 하지만 500만원의 권리금마저 포기할 수 없어 부동산 중개업소에 가게를 내 놓은 채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류독감·광우병 폭탄
식재료비 등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한데다 광우병 사태에 조류독감까지 삼중고가 겹치면서 음식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 들어 4월 말까지 폐업을 신고한 음식점은 대구에서만 모두 1천960개소로 월평균 400여개소다.
가장 폐업신고가 많은 업종은 고기류를 취급하는 한식업, 그 뒤를 잇는 것이 치킨집 등이 포함된 기타 업종으로 집계됐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변정열 지도과장은 "이번 달에는 폐업하는 업소가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임시휴업 중인 곳까지 합친다면 대구의 음식업계는 '고사 직전'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폐업과 휴업이 줄을 잇는 것은 육류 소비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20년째 육류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는 박남석(49)씨는 "쇠고기 매출은 지난해의 10분의 1수준이 채 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을 닫거나 개점 휴업상태인 업소들이 속출하면서 200곳이 넘는 거래처 중 20%는 사실상 거래가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가게 규모가 큰 오리집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한 달에 3천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던 달서구의 한 식당은 지금은 한달에 몇백만원도 벌지 못하고 있다. 10명에 달하던 직원을 모두 내보내고 2명만 남겨놓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곳의 직원은 "조류독감으로 인체감염 사례가 없다고 아무리 입이 마르게 하소연을 해도 손님들은 고개를 저으며 돼지고기만 찾는다"고 했다.
영세 치킨집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치킨집들이 배달 중심의 영세 업체이다 보니 자본금 부족으로 '업종전환'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조류독감이 잠잠해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재료비 상승으로 창업문의도 끊겨
최근 외식업에 다소나마 강세를 보이는 것은 '돼지고기'다. 쇠고기, 닭고기의 소비가 줄면서 그나마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운영이 쉬운 것은 아니다. 업주들은 치솟는 식품 원재료 값 때문에 마진율을 맞추기가 힘들다며 울상이다. 통상 음식점의 식재료비는 30~35%를 적정선으로 보지만 최근에는 50~60%까지 치솟았다. 한 삼겹살 업소는 "지난해 1만1천원(1㎏)이었던 제주산 돼지고기를 지금은 1만6천원에 공급받는데다 양념 하나까지 가격이 오르지 않은 식재료가 없다"고 했다.
재료가격 상승은 중저가 음식점에게 치명적이다. 마진폭을 줄이고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는 곳이 많지만 요즘은 많이 팔수록 오히려 적자에 허덕거리는 위기에 직면한 곳이 많다. 음식업중앙회 변정열 지도과장은 "식자재 가격 상승률이 70%에 달하고 있지만 음식 가격은 고작 500~1천원 올리는 것이 전부이다 보니 울며겨자 먹기로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이 식당이라고 하지만 최근에 새롭게 문을 여는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창업 컨설팅 전문가들에 따르면 요즘은 고작해야 소규모 분식집이나 커피숍에 대한 문의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한 창업컨설팅 관계자는 "음식업의 침체 분위기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안정궤도를 찾고 조류독감이 잦아든 이후까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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