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라는 형이상학적인 관념에 천착해 온 소설가 박상륭(69)씨가 신작 '잡설품'(雜說品)을 냈다. 창작집 '소설법'(2005) 이후 3년 만이고, 장편소설로는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하도다'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캐나다 이민 생활 초기에 병원 영안실 청소부로 일하면서 쓴 '죽음의 한 연구'(1975)는 실험적인 문체와 형이상학적인 주제로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 책은 수도승 유리가 '마른 늪에서 펄펄 뛰는 물고기를 낚으라'는 화두를 놓고 40일 동안 밀교적 고행을 벌이는 내용으로, 1995년 양윤호 감독에 의해 '유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으로 모두 3부로 구성된 '칠조어론'에서 '잡설품'까지 생명과 죽음, 해탈 등 초월성에 심취해 온 그의 극한적 사유는 여전한다.
그의 소설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주어와 술어가 뒤섞이고 문법까지 뒤틀린 데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스토리텔링형의 소설만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잡설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동서고금의 신화와 설화, 종교와 철학의 단서들을 조합해 쉼표(,)와 괄호의 나열에 한자, 영문까지 섞여 대단히 낯설고 불친절(?)한 소설 읽기를 제시하고 있다. 소설로는 특이하게 주(註)가 15쪽이나 된다.
'죽음의 한 연구'가 예수와 육조 혜능의 이야기를 해석한 것이고, 오랜 세월 동안 고행한 끝에 스스로 칠조가 되어 자신이 이룬 법설을 펼친 게 '칠조어론'이었다면, '잡설품'은 주인공인 시동이 고행 끝에 해탈, 혹은 가출해 유리의 팔조(八祖)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석가모니 예수에 카인과 유다, 공자와 니체 등 '거인'들이 출연해 소설 속 사상의 떠들썩한 경연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은이가 이번 책에서 새로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우주적 여성주의, 가학과 피학의 폭력 문제 등이다. 특히 인간의 재림을 깊이 조명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인간이기의 까닭에, 인간주의를 제외하곤, 무엇이 절대적으로 선하며, 절대적으로 정의롭고 정당한 것이 있겠느냐"고 물으며 '인간의 재림이 필요하다'고 설을 풀어놓고 있다.
제목 '잡설품'은 사사로운 얘기인 '잡설'과 불교 경전에서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는 '품(品)'의 형식을 추가해 이뤄진 것이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잡설'로 일러왔고, 그 의미에 대해 '경전과 소설의 사잇글'이라고 밝힌 바 있다. 536쪽. 1만4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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