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中企 '2세경영' 확산…과도한 증여·상속세 논란

"가업 이으려다 기업 망하겠어요"

#1. 대구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68) 대표. 30년간 기업을 경영한 그에게 요즘 고유가와 원자재값 폭등보다 더 큰 고민이 생겼다. 이제는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은퇴하고 싶은데 증여세 부담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A 대표가 아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400억원 정도.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증여받고 증여세를 내든지, 사후 물려받고 상속세를 내든지 A 대표의 아들은 똑같은 비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 현재 30억원 초과분 50%인 증여세율로 계산하면 200억원 정도를 납부해야 한다. A 대표의 아들이 당장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파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경영권을 넘기는 외는 방법이 없다. A 대표는 "세금 부담 때문에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기업을 매각하면 돈은 건질 수 있겠지만 수많은 근로자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털어놨다.

#2. 경북 영천에서 동양종합식품을 운영하고 있는 강상훈(44) 대표는 2세 경영인이다. 그는 3년전 가업을 이어받았지만 아직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강 대표의 부친은 3년전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부친 사망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던 그는 상속세에 대해 무지했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변호사와 세무사들도 상속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데도 없었다. 부친으로부터 받은 재산은 100억원 상당으로 상속세는 15억원 정도 나왔다. 하지만 당장 납부할 돈이 없었다. 강 대표는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하고 세무서에 주식을 현물 납부해 충당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3년이 지난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 대표는 "세무서가 자산관리공사에 넘긴 회사 주식 때문에 임원교체나 설비투자를 위한 대출을 받을 때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데 투자와 운영상에서 보이지 않는 제약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지역에서도 2세 경영인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상속세 논란이 뜨겁다. 중소기업인들에게 상속세는 '뜨거운 감자'다. 상속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수십년간 일군 회사를 포기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의 고령화 추세와 더불어 중소기업 대표자들의 고령화 역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5~10년 이내 중소기업의 가업승계 문제가 기업 경영의 주요 현안이 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업력 30년 이상, 업력 20년이면서 55세 이상 된 중소기업 1천879개사 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1%가 가업승계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가업승계의 주된 장애 요인으로는 응답자의 78.2%가 승계 관련 과중한 조세부담을 지적했으며, 다음으로 후계자의 불확실한 경영 역량(41.0%), 영위 사업의 사업수익성 약화(35.8%)를 꼽았다.

상속세 및 증여세를 납부하기 어려운 주된 이유는 현금 등 납부에 필요한 기타 자산이 부족하기 때문이 48.6%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개정된 세법은 중소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정부의 정책 의지가 일부 반영됐다고는 해도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중기협이 기업은행 거래 중소기업 중 업력 20년 이상이고 55세 이상 중소기업 CEO 2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만이 작년말 세법 개정안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 세법에 따르면 상속재산이 10억~20억원인 기업은 상속세 경감률이 30%에 가깝지만, 상속재산이 30억~150억원인 기업은 경감률이 20%대에서 점차 감소해 300억원을 초과하면 10% 이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기업인들은 기술력 제고, 고용안정 등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고 가업승계 제도의 실질적 가치가 큰 중견기업의 경우 개정 세법의 실효성이 미흡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 기업의 영속성을 지원하고 경제의 안정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정우영 부회장은 "지역 기업들이 상속세 및 증여세 부담으로 가업승계를 포기하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반전돼 대를 물려서 장수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속·증여세제 개선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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