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는 지난 4월 대규모 출판문화산업단지를 조성, 대구를 저작물 출판 및 스토리텔링산업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까지 남대구IC 일대에 24만5천㎡ 규모의 단지를 만들고 우선 200여 업체를 입주시켜 출판산업을 집적화하는 한편 콘텐츠 재생산 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지난달 24일 개발계획 용역작업에 착수했으며 2012년부터 출판문화산업단지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출판문화산업단지가 가동되면 흩어진 36개 생산공정이 집적화, 계열화됨으로써 전문인력 양성, 기계 구입, 기술 개발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대구시는 '스토리텔링산업지원센터'를 건립, 저작활동 지원시스템을 갖추고 저작물을 전자출판, CD, 3D입체형 전자출판 등의 콘텐츠로 재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꿈의 출판문화산업단지'가 조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꿈을 이루려면 넘어야 할 산이 높다.
▶ 생산공정 집적화 효과 얼마나 될까
우선 생산공정 집적화, 선진화로 출판·인쇄 수주물량을 늘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단순 제책, 제본 분야는 중국업체에 밀리고 있다. 특히 책의 표지나 두 번째 페이지를 접거나 붙이는 등 수공이 많이 필요한 디자인이 등장하면서 저임금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에 비해 불리하다.
대구시와 인쇄조합 측은 "인쇄업체를 집적화함으로써 장비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생산분야 역시 제책, 제본을 벗어나 고부가가치 분야인 전자책, 3D입체산업으로 연결하면 장기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10년 앞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구권 업체들의 수주물량 중에 전자책, 3D입체 영상물을 필요로 하는 물량은 극히 적다. 갈수록 수요가 늘어난다고 하지만 얼마나 늘어날지는 의문이다.
인쇄조합 측은 "서울에서 기획단계를 마친 교과서나 참고서뿐만 아니라 전자책, 3D입체산업영상물의 영남권 물량의 생산기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서울의 출판사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다. 2006년, 2007년 적게는 2권, 많게는 4권의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서울의 한 대형 출판사 관계자는 "인쇄 물량이 많을수록 인쇄단가가 떨어지는데 물량을 두 군데에 나눠 인쇄하려면 가격이 많이 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쇄공정의 집적화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 남산동의 한 인쇄업체 대표는 "현재 위치 보상가, 입주단지 분양가, 이전 비용 등이 해결된다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고 말했다.
▶ 지역 출판사에는 어떤 이익 있나
출판 분야는 인쇄분야와 사정이 또 다르다. 현재 대구의 출판사는 70개 안팎. 출판사 숫자가 극히 적은 데다 얼마나 많은 출판사가 단지에 입주할지는 의문이다. 대구의 한 출판사 대표는 "물류나 공동창고 이용 등은 유리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쇄는 몰라도 출판은 집적화가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집적화할 경우 작업의 다양성, 출판사의 색깔이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출판사는 고유 이미지가 중요한 만큼 '단체로 묶이는 것'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고 했다.
▶ 스토리텔링산업 육성, 가능할까
대구시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스토리텔링산업'. 이에 대한 관심은 현재 대구의 인쇄 관련 업체와 종사자 상당수가 수주방식에 의한 인쇄물 제작, 가공에 치우쳐 있어 지적콘텐츠 산업과는 거리가 있다는 진단에서 비롯됐다.
김대권 대구시 문화산업과장은 지난 4월 본지와 인터뷰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갖춘 문화콘텐츠 발굴에 지역 문화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며 "출판단지와 스토리텔링지원센터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스토리텔링을 산업화하는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저작활동 지원시스템을 갖춤으로써 스토리텔링산업이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서울의 대형 출판사들은 거액의 공모를 통해 스토리를 발굴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스토리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전담팀을 운영하는 출판사도 많다. 광고 회사들은 스토리 만들기에 머리를 싸맨다. 그럼에도 좋은 스토리 창작은 어렵다.
박정애 강원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 교수(소설가)는 "인쇄(책·CD·전자출판·영상포함) 인프라에 스토리텔링을 결합하는 방식은 순서가 잘못됐다. 스토리가 확보되면 인쇄인프라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아쉬운 것은 소스이지 재가공법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지원센터를 운영한다고 해서 스토리가 생산되지는 않는다. 지원센터가 아니라 프로젝트 수행기능을 갖춘 연구소 형태가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스토리텔링산업은 '대구출판문화산업단지'의 핵심일 것이다. '스토리' 없이 '텔링'은 없다.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Multi Use)'의 꿈이 꿈에 불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구시가 지적콘텐츠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출판문화산업단지'는 '첨단인쇄골목' 수준으로 격하될 수도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Multi Use)=작가들이 만든 이야기를 만화, 영화, 전자북, 광고, 모바일 등 다른 장르의 문화상품으로 만들어낸다는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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