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걸어야죠."
지난 24일 낮 12시 동대구역을 출발한 대한안마사협회 대구지부 1급 시각장애인 회원 4명은 29일 현재 울산시 언양을 거쳐 부산을 향하고 있다. 최종 목적지는 한라산 꼭대기. 벌써 4일째 초여름 뙤약볕과 폭우를 견디며 갓길도 없는 국도를 지팡이로 두들겨가며 목숨 건 도보행진을 하고 있는 것. 앞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현행 의료법 82조에 의해 시각장애인들에게만 허용된 안마사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것. 군 복무중 사고로 실명했다는 고병희(33)씨는 "시각장애인들의 권익을 지켜내기 위해 결코 행진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마사로 일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시각장애인들이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위헌 소송을 낸 스포츠마사지 등의 단체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시각장애인들은 "앞을 못보는 장애인에게 허락된 유일한 직업"이라고 버티고 있는 것.
사실 안마사로 일해도 벌이는 많지 않다. 출장안마사로 일하고 있는 최상돈(52·시각장애인)씨가 한달 꼬박 일을 해서 손에 쥐는 돈은 40만원 선. 한 건에 5만원을 받지만 왕복 택시비와 알선을 해 준 모텔에 소개비로 떼이는 돈을 제외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2만5천~2만8천원에 불과하다. 최씨는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전화만 주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하지만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2, 3일에 한번 정도 일거리가 있다"며 "같은 시각장애인인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해도 한달 수입이 100만원을 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안마사'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이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부터 재활 직업 교육으로 안마사 교육을 받아 졸업생의 90% 이상이 안마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대구 광명학교 교사로 23년째 일하고 있는 김종환(53·시각장애인)교사는 "고등부가 되면 의무교육 과정에 안마교육이 포함돼 있다"며 "만약 또다시 위헌 판결이 내려진다면 현재 광명학교에 재학중인 고등부 과정 40명은 갈길을 잃게 된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편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사 직업을 허용한 법조항에 대한 공방은 2006년 시작됐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2006년 5월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렸지만, 국회는 같은 해 9월 안마사들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으로 제한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지금까지 지루한 법정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것.
헌재는 다음달 12일 공개변론을 통해 이해 당사자들과 관련 기관의 주장을 충분히 들은 뒤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것인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인가'에 대한 판결을 다음달 26일 내릴 예정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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