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노래의 언어를 노래했고, 시대의 말들을 토해 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다시 돌아가 '구르는 돌'처럼 마음의 지렛대로 세상을 저어 나갔다. 1960년대 이후 노래를 부르는 모든 이들 중 가수란 이름과 함께 '예술가'란 월계관을 써도 충분한 예인. 미국 대학들은 그의 가사를 문학 강의 교재로 채택하고, 10년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대하였으며, 브루스 스프링스턴은 '엘비스가 우리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면 그는 우리의 마음을 깨웠다'고 평가한 사람. 바로 가수 '밥 딜런'이다.
독립 영화 감독인 토드 헤인즈는 밥 딜런이 절대 한 사람의 가수로 평가되거나 재단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전설이나 신화나 저항 같은 몇 마디의 도그마속에 갇혀 그를 신으로 추대하는 것이야말로 밥 딜런이 가장 싫어 할 만한 짓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그리하여 새 영화 '아임 낫 데어'는 없음으로 있음을, 침묵으로 소리를, 평화로 광기를 증언한다. 밥 딜런의 6명의 분신이 각기 다른 시대, 각기 다른 이름의 딜런으로 나와 딜런 같기도 하면서 아니기도 한 초상화의 한 조각을 채운다. 복잡한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 같은 전무후무한 실험적 형식인데도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의 약에 취한 듯 아름답고 고삐 풀린 이미지들은 과거와 현재를 충돌시킨다. 마치 웅얼거리는 단어의 춤들 사이로 시대의 지층이 되고, 전복이 되고, 한 줌의 흙이나 씨앗이 되었던 딜런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가사들처럼.
쥬드 퀸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Butterfield Blues Band)와 함께 통기타를 버리고 전기기타 연주를 하는 또다른 딜런이다. 케이트 블랑쳇은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딜런다운 소름끼치는 연기로 남자 연기자들을 압도한다.
그밖에도 1967년, 오토바이 사고 이후 우드스톡에 은거하던 딜런은 어느날 서부에서 홀연히 사라진 빌리 더 키드로 표상화되어 서부에서 말을 달린다. 젊은 시절 밥 딜런이 헌팅턴 병으로 죽어가던 병상을 끝까지 지쳤던 포크의 대부인 우디 거스리와 반항의 피로 충만한 시인 랭보도 등장해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는다. 저항음악으로 사랑받는 포크 가수 '잭 롤린스'(크리스찬 베일)와 영화속에서 잭 로린스를 연기하는 배우인 '로비'는 전 부인 사라 로운즈와의 사생활이 얼비쳐진 또 다른 딜런이다. (심지어 밥 딜런이 'high way revisited'에서 '여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지요, 존스씨'라고 했던 그 미스터 존스 마저 기성세대의 대변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
토드 헤인즈는 때론 다큐적인 인터뷰 형식으로, 때론 영상 에세이 같은 서정성으로, 때론 멜로 드라마처럼 그들 6명의 캐릭터들 모두를 딜런이면서 또한 딜런이 아닌 자로 만들었다. 오직 밥 딜런의 음악만이 이들을 통과 하면서 시대의 공기와 호흡했던 딜런의 모호한 자취를 스크린에 흩뿌린다. 그리고 딜런의 평생의 심중을 제목은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아임 낫 데어. 나는 거기에 없다' 라고.
'아임 낫 데어' 같은 영화는 절대로 몇 마디 말로써 박음질 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저 가서 보라고 할 수 밖에. 알고 보라 할 밖에. 모순의 영상시어 전집 '아임 낫 데어'. 진정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보내는 이보다 멋진 헌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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