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6월 10일/바나실 문화공간
아름다운 풍경화의 전통이 종말을 고한 뒤 현대미술은 자연에 대해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미술에서 자연과의 단절을 느낀다. 만약 이런 현실에서 비껴나 여전히 자연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재현하거나 의미없는 꾸밈(가상)으로 묘사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미술이 남긴 잔영에만 머물며 현실을 기만적으로 호도하는 통속 취미로 의심받을 수 있다. 예술작품이 개인의 주관적 산물이긴 하지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로 소통되는 대상이라고 할 때는 그것이 누구에게나 공감되는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표현된 어떤 정서의 상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매우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다. 시인의 마음으로 망가지는 자연을 바라보며 한숨짓는가 하면 한편으론 자원으로서의 개발 가치에 눈독 든 무자비한 시선들에 동참하고 있다. 그 앞에 서면 우리를 전율케 하는 아름다움일지라도 지도 위에 그은 선을 따라 산이든 강이든 토막내기도 하고 뒤엎고 부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 어딘가에 봄물에 불어나는 실개천이 남아있고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한적한 물가에 시름겨운 농부가 서 있다는 것이 문득 놀랍다. 유명수의 풍경화는 어쩌면 가장 고답적이고 진부한 방식으로 그런 것들을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자연의 모습 한 자락을 보여주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으로서 체험하게 한다.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파괴나 상처를 보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한쪽에 남은 모습을 통해 애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그는 자연스러운 감각을 중시하면서 자연에서 얻는 직접적인 체험과 발견을 추구한다. 작가의 그런 노력과 함께 전달되는 특별한 느낌은 자연을 직접 대면할 때 느끼는 것을 공감하게 하는데, 그 특별한 느낌이 주는 체험적인 깊이가 그의 풍경화를 익숙한 가운데서 오히려 낯설게 한다. 풍경화가 정태적인 장면의 피상적인 재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기가 표현되어야 한다. 그의 그림에서는 꾸밈이나 과장의 작의를 줄이고 무언가 진실과 만나려고 끈기있게 시도한 흔적들을 통해 그것이 읽힌다. 개념적으로 파악된 것, 이미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 직접적인 것을 포착해 내기 위해서는 작가나 관객 모두 감각의 특별한 집중이 요구된다. 멀리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가 있을 때 느끼는 자연이다. 사건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경험을 자극하는 자연이다. 아름답게 꾸며낸 경치라기보다 직면하는 그 순간에만 보여주는 풍경 속의 진정한 모습을 환기시킨다. 그런 정서가 그의 그림들을 단순히 아카데믹한 자연주의와 동일시할 수 없게 하는 차이를 만든다. 아카데미즘을 벗어나게 하는 직관적인 시각의 실현과 몰입의 표현세계가 거기에 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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