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 어머니, 아리가토" 본지 보도 우순필씨 日언론 취재

"모두 가즈토의 한국 어머니를 '보살님'이라고 불렀지요. 일본이 강점기 당시 얼마나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까? 부끄럽죠. 패전의 혼란과 분노 속에서 일본 아이를 거둬 십 수년간 키웠던 한국 어머니의 모성은 자비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1945년 10월 일제강점기 후의 혼란 속에서 영양실조로 쓰러진 히로하타 가즈토(한국명 이재건)를 12년간 자식처럼 키웠던 우순필씨의 사연이 매일신문에 보도(5월 13·15일자)된 뒤 고토 후미토시(70) 일본 후쿠오카TNC(서일본방송) 전직 기자가 29일 대구를 찾았다.

이 사연을 '서일본문화'라는 격월간지(誌)에 싣기 위해 취재차 온 고토씨는 고(故) 우순필씨의 유족들을 만난 뒤 30일 우씨의 묘소도 돌아봤다. 그는 유족들이 전하는 사연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받아적었다. 동행한 가즈토씨의 친구 신현하(81)씨가 통역을 했다.

고토씨는 유족들에게 가즈토씨의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가즈토는 늘그막에 '고사케'라는 요리집을 운영했는데 방송국과 가까워 직원들이 자주 찾았다. 해질녘이면 '한국의 어머니'가 그립다고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한일 우호에 이바지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가즈토가 죽고 난 뒤 우씨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두 주인공이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약속한 다큐멘터리는 제작할 수 없지만, 글로써 이 아름다운 사연을 일본에 알리고 싶다."

29일 오전 북구 서변동 국우터널 인근에 있는 우씨의 묘지는 전날 내린 비를 한껏 머금고 있었다.

"격동의 세월이 끝나고 모두가 '쪽바리'라고 돌팔매질을 할 때 우씨는 가즈토를 품에 안았습니다. 제가 1974부터 TNC 서울특파원으로 일하면서 각종 시위를 취재할 때 데모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경찰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어머니'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우씨는 한국과 일본이 꼭 배워야할 '관용과 포용'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토씨는 우씨 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또 숙였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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