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 경기에 출전한 양준혁
축제가 열리고 있던 영남대 한쪽에 자리잡은 야구장. 지난 23일 삼성과 LG 트윈스의 2군 경기가 예정된 곳이다. 2군 경기가 열리는 구장에서 관중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얼핏 봐도 100여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관중석을 채웠다. 자리가 없어 펜스 너머로 까치발을 한 채 구경하는 학생들도 여럿.
학생들의 시선은 한 곳을 향했다. 덩치 큰 사나이. 양준혁이었다.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는 양준혁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양준혁을 소리쳐 불렀다. 일제히 휴대 전화를 꺼내들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양준혁의 인기는 이곳에서도 여전했다. 하기야 그는 영남대가 낳은 최고의 야구선수 아닌가.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학생들의 환호성에 손을 흔들어줬다. 기자와 2군행 이야기를 나눌 때 분위기와는 또 다르다. '팬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1회말 우동균의 안타와 송주호의 볼넷으로 잡은 무사 1, 2루 상황. 3번 타자 양준혁이 타석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술렁였다. 양준혁은 신중하게 공을 보다 볼넷을 골라 1루를 밟았다. 손지환이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를 치자 1루 주자 양준혁이 앞선 주자 둘에 이어 홈으로 파고들었다. 1군에서 늘 보여주는 모습처럼 전력 질주했으나 결과는 태그아웃.
김용국 코치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면박을 줬다. "어이, 서서 들어오나? 슬라이딩 해야지, 뭐 하노?" 양준혁은 겸연쩍은 듯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날 경기에서 삼성은 LG에 7대14로 패했고 양준혁은 4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2군에 내려가 있는 지금, 그가 기록에 욕심을 낼 상황은 아니다. 시즌 개막 전 8개 구단 가운데 최강이라 평가받던 삼성의 '클린업 트리오'는 공중분해됐다. 4번 타자 심정수는 양준혁에 앞서 2군에 내려갔지만 무릎 부상이 악화돼 올 시즌 뛸 수 있을지 불투명하고 장타력 부재로 제이콥 크루즈는 21일 퇴출됐다.
삼성은 신예 타자들의 활약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 크루즈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투수 탐 션을 영입했기에 더 이상 공격력 보강은 없다. 때문에 양준혁의 가세가 더욱 절실하다. 2군에서 실전을 치른 날도 양준혁은 경기 후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다. "야구도 인생사처럼 부침이 있기 마련이에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1군의 매운 맛을 본 모상기
삼성 라이온즈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젊은 사자' 모상기(21)는 최근 단맛과 쓴맛을 한꺼번에 봤다. 2006년 입단한 모상기는 대선배 양준혁의 대타로 16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생애 첫 1군 타석에 들어섰다. 야구를 하면서 꿈에 그리던 순간. 2군에서의 인내가 결실을 맺나 싶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날 2타수 무안타에 그쳤고 이튿날 선발 출장했으나 3타수 무안타에 그친 뒤 채태인과 교체됐다. 2경기에서 5타수 무안타 4삼진. 결국 20일 2군행 통보를 받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모상기는 실력 부족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직구 위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변화구는 1, 2군 차이가 크더군요.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는 2군으로 돌아오면서 눈물을 삼켰다. 뒷바라지를 해온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어설픈 모습을 보여서였다. 이대로 좌절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모상기는 다시 경산 볼파크에서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전 7시10분, 산책과 함께 시작된 일과는 오후 8시에 끝나는 야간 훈련까지 이어진다. 다음엔 야식을 먹을 차례. 볼파크 식당 아주머니들이 퇴근 전 챙겨놓은 빵과 우유로 배고픔을 달랜 뒤에야 하루가 끝난다.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까지 외출을 할 수 있을 뿐, 파김치가 될 때까지 일상은 반복된다.
1군과 달리 원정을 갈 때 당일 이동이 원칙인 2군은 새벽밥을 먹고 버스로 장거리 이동을 한 뒤 바로 훈련, 시합이 이어지기에 더 고달프다. 원정 숙소는 모텔, 경기장 간식(일명 중간식)은 햄버거가 전부이던 모상기에겐 숙소인 호텔부터 신선한 과일, 볶음밥과 면 등 수북이 차려진 간식까지 1군의 모든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숙식비 등 1군의 원정 1일 경비가 하루에 600만원이지만 2군은 150만원 정도에 불과하기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볼파크에서는 잠자리와 밥이 해결되잖아요. 연습장도 좋고. 야구만 생각할 수 있어 다행이죠, 뭐." 듣던 대로 낙천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대답. 하지만 속은 알차다. "일단 2군에서 공격 전 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다시 1군에 가게 된다면 꼭 자리를 잡겠다고 다짐하곤 하죠." 신일고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 김현수(두산)가 올 시즌 발군의 활약으로 스타로 떠오른 것처럼.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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