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그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

지금도 재즈곡 'summer time'을 들으면 슬퍼진다.

자장가 같은 가사지만 애조 띤 음률 때문인지, 가끔씩 울고 싶을 때 이 음악을 틀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약간은 허스키했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 기억이 나서 그런가 보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여고 1학년. 말똥만 굴러가도 웃음보가 터지던 시절이었으나

나날이 침울해져 가는 내게 펜팔의 기회가 왔다. 그시절 여학생이라면 한번쯤은 써보았을 국군 아저씨들과의 펜팔이 아는 오빠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마른 체구에 퀭하니 큰 눈은, 염세적인 편지 내용과 함께 외로워 보였다. 보수적인 아버지의 검열을 거쳐 내 손에 쥐어지긴 했지만, 편지를 읽어보는 그 맛에 살았던 것 같다.

어느날 편지 대신 소포가 하나 왔고 뜯어보니 카세트 테이프였다.

'섬머 타임'을 부르는 약간은 쉰 듯한 목소리도 그 사람의 일부인 냥 멋있게만 보였다.

그러나 나날이 편지의 내용은 여고생이 받아 보기엔 부담스러운 내용이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내 손에 편지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일찍 들어온 날 대문을 열고 들어온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마당에는 봄날 떨어진 벚꽃처럼 하얀 종이가 갈기갈기 찢겨 흩어져 있었다.

강아지가 떨어진 편지를 장난질해 놓았던 것이다. 남동생이 졸라서 키우던 강아지였으니 나와 동생은 싸움까지 했을 정도로 내게는 절절했던 편지였다.

오랜만에 온 편지를 포기할 수는 없고, 그 조각들을 주워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보니 내용은 연결이 되었다. 계속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서 궁금했다는 내용과 함께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별의 편지였다. 그일로 인해 아버지에게 반발심이 더 심해져 한동안은 방황하는 십대의 표본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에야 이메일이 손으로 쓴 편지를 대신하고, 중학생만 되면 휴대폰들이 다 있으니 삼십여년 전 우리 세대처럼 이런 식의 이별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도 보지는 못했기에 아련한 그리움을 밤이 새도록 몇 장씩 적어 보내고, 또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대문을 들어서는 기분을 요즘 세대들은 알기나 할까?

대학생 아들도 장문의 이메일보다는 간단한 쪽지로 안부를 묻고, 내용도 아주 짧은 단편적인 내용으로 사색의 문구는 아예 없다.

그때의 편지, 그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는 없지만, 고독이 절절이 묻어나는 일부의 내용과 멋지게 잘 부르던 그 노래는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섬머 타임'만 들으면 생각나는 그도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고 나처럼 나이 들어가고 있겠지.

신미경(대구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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