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이모가 남긴 밥상위 메모에 '엉엉'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안 사정이 많이 어려워져 어머니는 매일같이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이유도 모른 채 온 가족이 고생해야 했습니다. 급기야 어머니는 빚쟁이들을 피해 집을 비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당분간 우리끼리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연탄불은 당신이 갈 테니 밥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소보다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남동생과 나의 도시락을 싸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회사일을 마치는 대로 오셔서 집안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었습니다. 참을 수 없이 힘들었던 건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빚쟁이들의 독촉 전화, 그리고 엄마를 어디로 빼돌렸느냐고 욕하는 전화, 예고 없이 들이닥쳐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식이 끊긴 어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원망도 하며, 저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습니다. 밥통엔 갓 지은 따뜻한 밥이 들어 있었고, 밥상 위엔 맛있는 반찬들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혹시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어머니는 아니었습니다. 밥상 옆에 작은 메모지가 있었고, 깨알같은 글씨로 이모가 편지를 적어 놓았던 것입니다.

"경아, 잠시 들렀다 간다. 밥은 해놓았고 국도 냄비 안에 있단다. 국이 좀 싱겁지는 않은지 모르겠구나. 냉장고에 반찬 몇 가지 해놓았다. 아빠 오시면 더 꺼내서 같이 드리려무나. 경아가 너무 고생이 많구나. 조금만 더 힘을 내렴. 또 올게. 이모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네 명의 이모 중, 가장 나랑 친하고 마음이 고운 셋째이모가 왔다간 것입니다. 사실 셋째이모도 어머니한테 큰돈을 빌려주고 못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그날 엉엉 울면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 이후 어머니는 돌아오셨고 우리 가족은 힘든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이모는 아직도 어머니 일, 또는 나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좋은 이모입니다.

얼마 전, 나는 이모에게 그 편지 기억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모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합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받은 가장 따뜻한 편지는 나만 기억해도 충분하니까요.

서영경(대구 달서구 상인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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